[밀레니엄 인터뷰] 조지 카치아피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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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세계적 석학과 지도자들로부터 새 천년의 전망을 듣는 밀레니엄 인터뷰 시리즈. 그 열세번째 대상은 '신좌파와 68혁명' 연구의 권위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미 웬트워스 공대 인문사회과학부)교수다.

21세기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암울한 비관이 교차하는 세기말, '신좌파의 상상력' 이 미래의 열쇠라고 강조하는 그를 정수복 사회운동연구소장이 22일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 21세기는 지금 두 가지 색깔로 그려진다. 역동적인 지식기반 사회, 정보화 사회로 보는 긍정적 전망이 있는가 하면, 전세계적인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는데.

"'지금 이 순간 '아프리카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극빈층이 양산되고 있다. 물론 각국 정부나 사회운동 단체들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기업이 국경을 넘어 활동할 때 생기는 부작용들, 즉 초국적 자본의 폐해를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현재의 세계체제는 20년내에 붕괴한다고 전망한 것을 부정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

- 저서에서 68혁명을 세계적 차원의 혁명이라 규정했는데 오늘날 그 의미는 무엇인가.

"68년에 세계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혁명적 운동들을 서로 이어주는 것은 '에로스 효과' 다. 에로스 효과란 경제적 착취만이 아니라 인종적.정치적.가부장적 지배에 반대하기, 정치와 문화의 융합 등 해방을 향한 본능적 욕구의 자각을 뜻하는 것이다. 68혁명은 노동이 유희가 되고, 로고스와 에로스가 재통합되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사랑스럽게 포용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것이 제도화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68혁명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러나 68혁명이 남긴 '해방의 집단적 경험과 연대의식' 은 체제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제3의 길' 과는 다른 저항운동을 불러올 것이다. "

- 60년대에 월남전 반대 운동, 여성해방 운동 등 신좌파 운동을 겪은 미국의 정치 현실은 여전히 민주.공화 양당제인데 대안 세력의 등장이 가능하다고 보나.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로스 페로처럼 제3의 인물이 등장한 적은 있지만 한 인물에 의존하지 않고 대중이 참여해 현실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빈부 격차가 커질수록 노동운동의 활성화에 노력하는 것, 수감자의 인권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인권운동과 초국적 자본에 희생되는 제3세계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공공의 문제보다는 성적 쾌락, 소비생활 등에 더 관심을 둔다. 대중이 공공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집 아이를 예로 들면, 그 아이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TV다. TV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데, TV 속의 사람들은 개인적 가치를 추구하고 소비를 통해 자신을 실현한다. TV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굉장히 안전하고 좋은 곳이라는 것을 반복해 주입한다. 이처럼 영상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실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물론 내 아이도 스포츠 센터나 학교에 다니며 사회와 교류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분자화된 개인이 고독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을 뛰어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유럽의 그룹 하우스(Group House) 운동은 주목할 만하다. "

- 하버드에서 공부하다 불교에 귀의해 한국에 온 미국인 현각스님의 예처럼 신사회운동과 영성운동(New Age)이 묘하게 겹치는 것 같다.

"기존의 좌파적 시각에서는 뉴에이지 운동을 신비주의나 혁명에서 일탈하는 행위로 간주하겠지만 나는 둘 사이에 통하는 것이 있다고 본다. 사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개인 내면의 정신적 가치 추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요즘 서구 젊은이들이 정신세계나 동양의 사유에 관심을 갖는 것을 문명전환 운동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

- 인터넷 등 통신 공간에서 나타나는 사이버 공동체도 21세기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낼 것이라 생각하나.

"인도네시아 사태 때 민중탄압에 항의하며 정부의 인터넷 사이트를 해킹한 핵티비즘(Hacktivism)운동을 생각하면 일견 긍정적이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은 직접적 접촉이 없는 파편화된 개인의 관계망이란 점에서 앞서 말한 에로스 효과를 내는 반문화 운동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

- 주저서인 '신좌파의 상상력' 에서 한국의 80년대를 언급했는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결합한 한국의 87년 민주화 투쟁은 나에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국인들은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만, ' 87년 투쟁은 그런 유형의 사회운동을 세계로 전파하는 시대적 효과를 낳았다. 이건 다른 얘기인데, 노근리 사건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미국이나 서구는 코소보.유고 사태처럼 유럽에서 일어난 일들은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 노력했지만 인도네시아나 한국의 광주 같은 동양권의 문제에는 방관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노근리 사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일은 21세기에 동.서양의 차별적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중요한 일이다. "

만난사람= 정수복 사회운동연구소장

정리〓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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