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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펄펄, 가을 ‘꽃낙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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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15면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속담이 있다. 낙지 맛은 가을이 으뜸이라는 뜻이다. 가을 낙지를 ‘꽃낙지’라고 한다. 봄이 되면 ‘꽃낙지’가 ‘묵은 낙지’가 된다. 이때는 어찌나 굼뜬지 ‘묵은 낙지 꿰듯’이란 말은 일이 너무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맛도 떨어져 ‘오뉴월 낙지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태균의 식품이야기

일반인이 낙지 하면 동시에 떠올리는 동물은 엉뚱하게도 소다. 조선의 어류학자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말라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만 먹이면 거뜬히 일어난다”는 대목이 있어서다. 실제로 과거 민간에선 소가 새끼를 낳거나 여름에 더위를 먹고 쓰러졌을 때 낙지 한 마리를 호박잎에 싸서 던져 줬다. “이건 뻘 속에서 건진 산삼이야”라는 말을 소에게 건네면서.

이런 풍경은 낙지가 스태미나 식품임을 암시한다. “낙지 한 마리가 인삼 한 근과 맞먹는다”는 옛말도 낙지가 기력을 높이는 데 유용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병후 회복기에 있는 입원 환자에게 낙지죽을 추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낙지에 든 다양한 영양소 가운데서 스태미나 관련 성분으로 꼽을 만한 것은 열량과 단백질이다. 낙지 100g당 열량과 단백질 함량(세발낙지 기준)은 각각 55㎉와 11.5g이다. 사실 이 정도라면 다른 식품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볼 수 없다. 문어·오징어에도 단백질은 100g당 각각 15.5, 19.5g 들어 있다. 아마 이보다는 낙지의 뛰어난 맛이 식욕을 높여 사람과 소를 벌떡 일어나게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담백한 연포탕, 입이 얼얼한 낙지볶음, 시원한 낙지수제비, 낙삼탕(낙지와 인삼이 주재료), 갈낙탕(낙지와 갈비가 주재료), 낙지비빔밥, 낙지죽 등은 하나같이 입맛을 돋우는 ‘선수’들이다.

낙지·오징어·새우 등을 먹을 때 콜레스테롤이 꺼려진다는 사람이 많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들 식품에 풍부한 타우린(황 성분이 포함된 아미노산)이 콜레스테롤을 분해시키기 때문이다. 낙지 100g엔 타우린이 854㎎이나 들어 있다. 또 타우린은 간 건강과 시력 회복을 돕고 스태미나 증진, 원기 회복에도 유익하다. 원기 회복제로 판매되는 드링크류에 타우린이 다량 함유된 것은 이런 기능 때문이다.

그래도 콜레스테롤이 걱정돼 낙지 먹기가 망설여진다면 낙지 요리에 표고버섯을 넣는 것이 방법이다. 표고버섯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일본에선 생표고 100g(마른 것은 50g)을 일주일간 먹으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10%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낙지는 빈혈 환자에게 권할 만하다. 결핍되면 빈혈을 유발하는 철분과 비타민 B12가 꽤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혈압 조절에 유익한 미네랄인 칼륨도 100g당 273㎎ 함유돼 있다.

낙지는 주로 갯벌에서 산다. 오징어·문어·꼴뚜기 등과 함께 뼈가 없어 몸통이 물렁물렁한 연체동물이다. 우리 국민은 소금물로 살짝 데쳐 생식을 즐기지만 외국인은 절대 생으로 먹지 않는다. 문어와 마찬가지로 팔이 8개다. 그렇다면 세발낙지는? 세발낙지는 발이 셋이 아니라 발이 가는[細] 낙지라는 뜻이다. 세발낙지는 엄밀히 말하면 세팔낙지다. 낙지 입장에서 보면 발이 아니라 팔이다.

맛은 큰 것보다는 중간 것이, 몸통·머리보다는 팔 부분이 낫다. 단, 요리할 때 너무 오래 가열하면 질겨진다. 밀·콩·무와 찰떡궁합이다. 함께 넣고 살짝 데치거나 삶으면 맛과 풍미가 좋아진다. 특히 콩과 함께 끓이면 서로 알맞게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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