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모차르트와 비틀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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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95년 10월 비틀스가 런던에서 해체 25년만에 재결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세계의 음악팬들은 열광에 휩싸였다. '팝 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는 평을 듣는가 하면, 기네스북이 멤버 중의 폴 매카트니를 '지구상의 가장 성공한 작곡가' 로 지명했을 정도니 팬들의 기대는 당연했다.

그들은 존 레넌이 80년 살해되기 직전 작곡하다가 중단했던 '새처럼 자유롭게' 라는 노래를 마무리해 취입했다. 이 노래는 당연히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60년대의 명성을 되살려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이미지를 흐려놨다는 비판도 들었다.

그보다 두어 달 전인 그해 여름 체코의 프라하에서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이용한 장사로 떼돈을 벌고 있다는 외신이 심심치 않게 눈길을 끌었다.

45년의 생애 중 모차르트가 프라하에서 보낸 기간은 고작 3개월에 불과한데 무슨 까닭이었을까. 체코 사람들은 오페라 '돈 조반니' 가 1787년 프라하극장에서 초연(初演)됐다는 사실, 그리고 '후궁(後宮)으로부터의 유괴' (1783년)와 '피가로의 결혼' (1786년)의 프라하 공연이 그 어느곳에서보다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모차르트 산업' 을 일으킨 것이다. 지금은 모차르트가 프라하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이 두 개의 사실을 놓고 모차르트와 비틀스의 인기 척도를 가늠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온당치 못할 것이다.

우선 양자 사이의 2백여년이라는 시간적 차이, 그리고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이라는 근원적 차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중적 인기의 본질을 파고들면 그 척도를 재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좋은 예가 있다. 1745년 독일의 한 신문은 여러 가지 조사를 통해 당대의 독일 음악을 대표할 만한 10명의 작곡가를 선정, 순위를 매겨 발표했다. 1685년 동갑내기로 바로크음악의 쌍벽이던 헨델과 바흐는 그때 각각 5위와 7위를 차지했다. 지금까지도 그들의 이름은 찬연히 빛나고 있지만 다른 8명의 이름은 음악사에서 사라졌다.

최근 영국에서 60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지난 천년을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를 선정한 결과 모차르트는 비틀스의 존 레넌,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등 팝가수에 이어 7위에 머물렀으며 바흐는 겨우 10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비틀스가 현대음악에 미친 영향력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클래식과 팝을 한자리에 놓고 순위를 매긴 것도 그렇고, 모차르트와 바흐가 구색 맞추기 위해 끼여 있는 것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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