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범죄인 인도조약 의미] 美도피사범 3천여명 숨을곳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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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이 지난 5일 미국 상원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비준됨에 따라 미국 도피사범들의 강제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양국 정부는 이달 안으로 비준서를 교환,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이 공식 발효될 예정이어서 미국은 더 이상 범법자들의 도피처가 될 수 없게 됐다.

◇ 어떤 의미 갖나〓그동안 미국 도피 사범들에 대해선 사법권이 미치지 않아 수사가 중단되는 등 속수무책이었으나 강제로 데려와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국외도피사범의 40% 이상이 미국을 도피처로 택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범죄자들의 해외도피 의지를 꺾는 부수적 효과도 가져올 전망이다.

또 그동안 미국측이 정치적 양심수들까지 형사범으로 몰려 송환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조약체결에 소극적이었음을 감안할 때 우리의 인권상황도 이제 어느 정도 국제적 신뢰를 얻었다는 의미가 있다.

◇ 인도절차〓조약이 발효되면 한국 검찰은 미국으로 달아난 범죄인의 범죄사실.증거관계.적용법률 등을 게재한 인도청구서를 작성, 법무부.외교통상부를 거쳐 미 국무부로 보내게 된다. 그러면 미 국무부는 법무부를 거쳐 관할 검찰로 청구서를 보내고, 검찰은 소재를 확인해 범죄자를 체포한 뒤 해당 법원에 인도재판을 청구한다.

미국 정부가 양해하면 우리 검찰이 범죄인 소재파악에도 참여할 수 있다. 미 법원이 범죄자 인도를 결정하면 우리 검찰이 수사요원을 현지에 파견해 넘겨받는다. 다만 소환 때에도 재판을 거쳐야 하고 미국이 어느 정도 협조해 주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환시점은 늘 유동적이다.

◇ 인도 대상〓두 나라의 법률상 1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일반 형사범만 인도 대상이다. 따라서 한국에선 범죄가 되지만 미국에서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나 정치범은 제외된다.

현재 미국 도피 사범은 공식 통계(지난 8월말 기준)로 전체 해외도피 사범 6백31명의 42%수준인 2백63명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3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법무부는 추산하고 있다.

법무부는 세풍(稅風)사건에 연루된 이석희(李碩熙)전 국세청차장 외에 이석채(李錫采)전 정보통신부장관, 임춘원(林春元)전 의원 및 대형 경제사범 등 7~8명을 최우선 인도청구 대상자로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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