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원화값…주저앉는 수출…팔걷은 정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봇물처럼 들어오면서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달러의 수요와 공급을 감안하면 환율 하락은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속도다. 단기간에 지나치게 빨리 떨어진다는 점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정부가 5일 외환시장에 개입, 환율을 끌어올린 것도 이같은 판단 때문이다.

◇ 원화 절상요인〓대우사태가 해결기미를 보이자 외국인 주식자금이 들어오고 동시에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강해져 원화가치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또 지난달 전자.반도체.자동차 등의 수출이 잘 돼 수출자금이 이달초에 몰린 것도 원화가치를 높인 한 요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 관계자는 "국내 증권시장이 활황세를 지속한다면 환율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6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한은 관계자는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순유입액은 이달 들어 2일까지 4천2백만달러로 집계돼 외국인들의 주식매수 자금이 전액 새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고 설명했다.

한편 당국은 4일까지만 해도 구두개입만 해왔으나 5일 달러당 1천1백80원선까지 붕괴될 가능성이 보이자 시장개입에 나섰다.

재정경제부 윤용로 외화자금과장은 5일 오전 10시쯤 "최근 급격한 환율변동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다" 며 "정책적 매수와 은행들의 외화 충당금 수요 이외에도 다각적인 매수를 강구하고 있다" 고 일단 다시 구두로 정부 의중을 알렸다.

하지만 환율이 계속 급락하자 결국 오후들어 외환당국을 통해 달러를 사들여 환율을 끌어올렸다.

◇ 환율 전망〓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수급상 요인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딜러들은 특히 원-달러 환율의 하락폭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매수 규모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외국인들이 현재와 같이 주식을 사들인다면 조만간 달러당 1천1백80원선이 무너진 뒤 그 선에서 외국인들의 반발매수세가 일어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딜러는 "외국인들의 거래패턴을 지켜본 결과 일부 거래자들은 달러 과다매각에 따른 되사기 시점인 1천1백80원 초반에서도 달러화를 판 것이 포착됐다" 며 "외국인들이 달러당 1천1백80원선에서 반드시 매수세로 돌아설 것 같지는 않다" 고 주장했다.

이 딜러는 "최근 증권시장에 들어오는 외국인 자금이 유럽계 은행들을 통해 외환시장에 나오는 점을 볼 때 파이낸셜 타임스 지수(TFSE)의 한국 편입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망도 가능해 당분간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순매수는 계속될 것 같다" 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외국인 주식매수가 이어진다면 달러당 1천1백50원선까지도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정부 대책〓정부는 대우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요인이 해소되면 원화가치가 절상압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절상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는 반응이다.

엄낙용(嚴洛鎔)재경부 차관은 "최근 원화절상은 우리의 대우문제 처리에 대한 해외의 긍정평가를 반영한 측면이 있고, 빠른 경기회복세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원화가치는 꾸준히 평가절상될 것으로 본다" 며 "그러나 급속한 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환율안정을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다. 먼저 국내에서 달러수요를 일으키는 대책으로 시중은행에 대해 해외부실자산에 대한 충당금은 달러로 쌓도록 할 계획이다.

이미 한국은행은 시중은행들에 대우사태로 떠안은 해외부실자산에 대한 실태파악을 요구했다.

또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하루하루 환율의 급변에 대응해 여유자금을 갖고 외환시장에 개입하게 된다.

뒤이어 정부도 직접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원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해 달러를 직접 사들이는 방안이다. 정부는 이미 국회에서 5조원 규모의 외평채 발행을 승인받아 둔 상태다.

김용덕(金容德)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대우사태로 침체됐던 채권시장이 안정을 되찾는 대로 외평채 발행에 나설 예정" 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담배인삼공사 등 공기업들이 해외에서 주식예탁증서(DR)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도 가급적 자금을 해외에 예치해두고 사용함으로써 국내 외환시장 수급에는 중립적이도록 할 계획이다.

김광기.이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