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떠나고 1년, 환희와 준희네 집에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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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고 최진실의 두 아이와 할머니가 사는 집, 세 식구의 이야기를 여성중앙 11월호가 단독 취재했다.

서울 논현동의 주택가 환희네 집.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환희와 준희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신이 났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라고 보기엔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환희. 준희 역시 늘씬하게 잘 자라 제법 숙녀 태가 나는 일곱 살이다. 그 또래 아이들처럼 둘 다 붙임성이 좋다. 집에 손님들이 찾아온 것이 좋은지, 학교 갔다 온 오누이가 만나 할 얘기가 많은지 싱글거리며 장난을 친다.

“이모, 이거 예쁘지? 나 어떤 걸로 할까?” 사진을 찍는 날이라고 할머니가 일러두었는지 헤어핀을 잔뜩 들고 와서는 친절하게 ‘이모’라고 부르며 골라 달란다. 분홍색 핀 두 개를 골라 머리 양쪽에 꽂아주었더니 제 맘에 드는지 거울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일곱 살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주풍 베네치안 거울이 놓인 미니 화장대 위에는 ‘Apple’이라는 장식 이니셜이 걸려 있었다. “내 영어 이름이 애플이거든.” 숫기 없어 보이던 환희도 어느새 딱지 상자를 들고 와서는 ‘이모’에게 딱지치기 대결을 청한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만 하는 줄 알았더니 딱지치기가 요즘 환희의 취미 생활인가 보다. 환희는 듬직하니 잘생긴 장난꾸러기 스타일, 준희는 너무 사랑스러워 꼭 안아주고 싶은 꼬마 숙녀다.

예전에 이 집은 아이들에겐 ‘외갓집’이었다. 아래층엔 외할머니가, 위층엔 외삼촌 최진영이 살던, 아담한 마당이 있는 예쁜 집이지만 실내 면적은 자그마한 편. “애들이 원래 살던 잠원동 집은 너무 넓고 삭막하잖아요. 안 좋은 기억도 있고.” 할머니는 두 아이가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마당에 아이들을 위한 집을 새로 지어 본래 있던 집의 거실 한쪽 면을 트고 연결했다.

마당에도 데크를 깔아 아이들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맨발로도 들락거리며 놀 수 있게 하고 그네와 꽃밭도 만들어주었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두 아이는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데크와 거실을 오가며 떠들썩하게 논다.

“준희는 재즈 발레를 너무 잘해요. 미술도 하고 수영도 하는데 태권도도 하고 싶다고 얘기해요. 뭐든지 적극적이고 공부도 알아서 하고, 예능 쪽으로도 타고난 것 같아요.”
할머니 눈에는 제 엄마를 닮은 준희가 대견스럽다. 나중에 한가락 할 것 같은 여장부란다.

야무지게 말귀도 잘 알아듣고, 하고 싶은 말도 예쁘게 할 줄 아는 손녀를 보며 할머니는 딸을 떠올린다. “쟤 엄마가 그랬어요. 어릴 적부터 화내고 그런 게 없었죠. 내가 뭐 야단칠 일이 있어도 웃으면서 집 안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혼내질 못했어요. 우리 환희, 준희도 워낙 밝은 애들이었어요. 애들이 천진하게 잘 크다가 워낙 충격을 받아서….”

정옥숙씨는 인터뷰 도중 자주 한숨을 내쉰다. 얘기를 듣고만 있어도 두 아이의 모습에서 엄마 최진실의 얼굴이 오버랩되는데, 그 엄마의 마음은 오죽하겠나. 자꾸만 눈가가 붉어져 말이 없다가도 창 너머 마당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기운을 차린 듯 말을 잇는다. “그래도 참 잘 커요. 환희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면, 선생님이 그러세요. 환희가 웃으면 교실이 다 환해진다고.”

담임선생님이 노란 용지의 통신문에도 글을 많이 써서 보내신단다. 환희가 성격도 밝고 학교에서 인기도 좋고 양보도 잘한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학교를 자주 찾아가진 못하지만 1학기 참관 수업에 갔더니 환희가 항상 밝고 아이들과도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엄마 떠나고 일 년, 적응 빠른 아이들은 새 생활에 많이 익숙해진 듯 보였다. 딸 보낸 엄마는 시간이 갈수록 딸의 생전 모습이 자꾸 가슴에 파고드는데, 아이들은 다행히 엄마 떠난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한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시간만한 위로가 있겠나. ‘그 일’이 있던 날,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환희의 충격은 너무 컸다. 준희는 그래도 어렸었지만 환희는 ‘우리 엄마 어떻게 해달라’며 울기만 했었다. 충격 때문인지 엄마 떠나고 한참 동안은 환희가 죽음에 대해 자꾸 얘기를 해서, 할머니는 늘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손자가 “엄마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물으면 할머니는 애써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대답했고, 그러면 손자는 또 “하늘나라 가면 만날 수 있는 거냐”고 되묻곤 했다. 사람이 자연적으로 늙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그때 엄마를 만날 거라고 설명을 해주면 환희는 며칠을 생각해 보고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또 던진다.

“할머니, 한 가지 걱정이 있어. 엄마는 젊어서 하늘나라 갔는데, 내가 늙어서 하늘나라 가면 엄마가 나를 알아볼까. 나는 그게 걱정이야.” 환희가 엄마를 잊은 건 아니다. 엄마가 천사가 되었다고 믿고 있단다. “이제는 가족이 적으니까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아야겠다”는 말을 해서 할머니를 웃기기도 한다.

이렇게 종종 엄마 얘기를 하는 환희에 비하면 준희는 엄마에 대해 얘기를 통 안 한다. 처음엔 자다 깨서는 엄마 보고 싶다고 칭얼대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엄마 생각이 나는지 갑자기 울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일이 별로 없다.

“준희가 잠자다 울면 환희도 깨서 덩달아 울어요. 그러면 내가 업고 재워주면서, 애들도 울고 나도 울고 그런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시간이 흐르니까 애들도 가슴에 묻었는지 이제는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환희는 요즘 들어 엄마 꿈을 자주 꾼다. 어린아이가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스토리 있는 꿈을 꾸는 게 할머니는 영 신기하다.

환희의 꿈에 등장하는 엄마는 주로 이런 모습이다. 자기가 구름을 타고 하늘나라에 갔는데 엄마가 솜사탕을 사줘서 같이 얘기를 나눴단다. 엄마가 환희에게 ‘환희야, 너는 사는 게 행복하니?’ 하고 묻기에 환희는 ‘엄마, 나 사는 거 몰라? 하늘나라에서 다 보고 있다면서.’ ‘엄마는 하나도 몰라. 엄마는 너무 심심해. 환희랑 같이 살고 싶어.’ 그러면서 환희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씻겨주고 자장가도 불러준다. ‘환희야, 너 잠들면 엄마는 간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됐어.’ 환희는 이렇게 섬세하게 꿈을 꾸고 그 얘기를 할머니에게 들려준다.

이상하게도 간절히 기다리는 정옥숙씨의 꿈에, 딸은 잘 찾아와주지 않는다. 한번은 꿈에서라도 엄마를 만나는 환희가 부러워서 “꿈에 엄마 만나면 할머니 꿈에도 좀 찾아가라고 해”라고 얘기했더니 환희가 비법을 알려주었다. 엄마 사진을 베개 밑에 넣고 자면 꿈을 꿀 수 있다고. 그게 아홉 살 환희가 꿈에서라도 자주 엄마를 만나는 ‘비법’이다.

(자세한 기사는 여성중앙 11월호에 있습니다.)

취재_안지선 여성중앙 기자/ 사진_문덕관(studio 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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