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20년 살아 막막했는데 바깥생활 배우니 출소 후 걱정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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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개방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들이 이종성 교도관으로부터 사회적응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전자기기를 이용하는 방법부터 교통카드를 사용해 버스 타기, 지하철 개찰구 통과 방법, 현금인출기 이용법 등을 배우고 있다. [천안=프리랜서 김성태]


19일 충남 천안시에 있는 천안개방교도소. 폭행치사 혐의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50대 남성 A씨. 그는 슬라이드형 휴대전화를 집어들고는 한참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휴대전화 플립을 젖히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교도관이 액정화면 밀어올리는 방법을 알려주자 A씨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1988년 문을 연 천안개방교도소는 중·장기 수형자들의 원활한 사회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달 17일 ‘사회적응훈련원’을 개원했다. 이전까지는 과실범 위주로 수용해 왔으나 살인 등을 저지른 사람도 모범수에 한해 출소 6개월 전 이곳에서 수감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했다. 현재 출소를 앞둔 200여 명이 수용돼 있다. 이 중에는 20년째 수형 생활을 하고 있는 모범수도 포함돼 있다. 이 교도소는 높은 콘크리트 벽 대신 어른 키 높이의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지막한 하얀색 건물들이 무슨 연수원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강의동에 들어서자 출소 후 취업을 위한 면접 특강이 진행되고 있었다.

“면접의 승부는 첫인상에서 가려집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입꼬리가 내려가 있어요. 그러면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습니다.”

수형자 40여 명은 초빙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얼굴 근육 움직이는 법을 따라 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이들은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줄지어 선 수형자들의 식판에는 된장국과 밥에 생선가스·샐러드·김치가 올려졌다. 식사를 마친 10여 명이 종합생활체험관에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최신영화 DVD를 감상하는 이도 있었고, 컴퓨터 앞에서 e-메일이나 미니홈피 방명록을 확인하는 이도 있었다. 몇몇은 자판기 앞 테이블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수형자들은 이곳에서 현금입출금기·교통카드 이용은 물론 차량용 내비게이션·MP3플레이어·디지털카메라·휴대전화 사용 방법과 장보기,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일상생활 전부를 새로 익히고 있다. 분임장 B씨는 “출소 후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 주는 교육”이라며 “전자기기 사용법을 잘 몰라 교도소 생활을 한 것이 탄로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는데 그런 우려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오후 4시까지 이어진 취업 관련 강의를 들은 뒤 수형자들은 숙소인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이 생활관의 특징은 2층 침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B씨는 “일반 교도소에서는 작은 방 안에 6명씩 붙어 잠을 자기 때문에 다툼이 많이 일어나지만, 여기에서는 최소한 잠자리 문제로 싸우는 일은 없다”고 했다. 40개 채널이 있는 케이블 TV를 볼 수 있고, 정기적으로 노래 강사에게서 최신곡도 배운다. 신종 플루가 확산되면서 귀휴(휴가)를 다녀온 수형자는 반드시 1주일 동안 격리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게 최근 달라진 풍경이다.

이렇게 일반 교도소에선 꿈꿀 수 없는 생활 속에서도 수형자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40대 후반의 C씨는 “나갈 때가 다가오면서 설레긴 하지만 막막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친척들에게 중국에 돈 벌러 간다고 얘기했는데 탄로 나지 않을까. 취직해서 전과자란 사실이 발각되면 어떻게 하나… 크고 작은 걱정이 끊이지 않네요.”

오종학 교도관은 “수형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취업, 가족과의 융화 문제”라며 “특강과 기술교육을 통해 불안감을 떨쳐 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 =최선욱 기자 ,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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