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스파이 조직 에셜런 있다'-저널리스트 캠벨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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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감시당하고 있다. 당신이 사용하는 전화.팩스.E메일은 모두 '그들' 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

추리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오가는 모든 유.무선 통신망을 도청.감시하는 국제적인 '사이버 스파이' 의 존재가 최근 드러났다.

코드네임 '에셜런(특수부대)' -. 에셜런의 존재가 공개된 것은 지난해 1월. 수년간 이를 연구해온 저널리스트 던켄 캠벨이 유럽연합(EU)의회에 에셜런에 대해 폭로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부터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셜런은 1948년 미국 주도의 비밀협약에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이 서명하면서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캠벨은 공산권 국가에 대항하는 정보전에 활용되던 에셜런이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테러 및 국제범죄행위 저지라는 명분아래 전세계인의 사생활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 에셜런에 의해 정보가 수집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각 지역에서는 해외로 송출되는 모든 전화.팩스.E메일.무선 등을 추적해 이 가운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런던에 있는 영국 정보기관으로 보낸다.

영국 정보기관은 이를 맨위스의 인공위성을 통해 미국 메릴랜드에 있는 국가안보국(NSA)본부로 송신한다.

NSA의 주(主)컴퓨터는 음성인식 장치와 단어검색 시스템을 이용해 입력된 정보를 검색, 필요한 것들만 다시 골라낸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있는 사람이 프랑스 친구와의 전화통화 중 '폭탄' 이라는 심상찮은 단어를 내뱉는다면 그 통화 내용은 바로 모니터돼 영국을 통해 미국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캠벨은 NSA가 한 프랑스 회사와 브라질 회사간의 입찰가 협의 통화를 감청한 뒤 이를 미국 회사에 슬쩍 넘겨줘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사생활이 감시받고 있다는 주장에 유럽인들은 경악했다. 에셜런에 관련된 수십개의 인터넷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일부 네티즌들은 "미국이 전세계를 장악하려는 음모에 몇몇 유럽국들이 놀아나고 있다" 고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지난달 22일을 'D-데이' 로 정하고 이 컴퓨터 시스템을 교란시킬 수천통의 E메일을 발송하는 '사이버 테러' 를 감행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유럽연합 의회에서는 특별조사팀을 만들자는 제안이 발의됐고, 미국 공화당의 밥 바 의원은 이를 논의할 청문회 개최를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관계자들은 에셜런의 존재 여부에 관해 일절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2일 호주 정보기관의 관계자가 에셜런의 존재에 대해 시인했다고 보도했다. 호주 방위신호관리국(DSD)관계자인 빌 블릭은 BBC와의 회견에서 "DSD는 전화.E메일 등 통신 도.감청을 실시하고 있으며, 영국과 미국에도 비슷한 감청시스템이 존재한다" 고 말했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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