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41번째 42.195㎞ … 이봉주 오늘 고별 레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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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마라톤에서 순환 코스는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끝난다.

그래서 ‘봉달이’ 이봉주(삼성전자 육상단)는 처음 시작했던 곳에서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다. 이봉주가 21일 대전에서 열리는 제90회 전국체전 남자 마라톤에 충남 대표로 출전한다. 이날 레이스는 이봉주 마라톤 인생의 피날레다.

1990년, 스무 살 청년 이봉주는 충남 전국체전(대전)에서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다. 그 후 40번 마라톤을 완주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등 이봉주의 인생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지난 3월 서울국제마라톤을 끝으로 이봉주가 은퇴한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이봉주는 그가 첫 발을 내디뎠던 전국체전에서 41번째 완주하고 은퇴식을 치르기로 했다. 마지막 레이스를 하루 앞둔 20일 대전에서 그를 만났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죠. 다른 대회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시작만큼 끝도 중요하니까요.”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이봉주에게 1등을 원하는지 묻자 “선두권에서 달리고 싶다”고 답했다.

이봉주는 황영조와 동갑내기다. 황영조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금세 시들었지만 이봉주는 무궁화처럼 피고 지고 또 피었다. 묵묵히 달리고 또 달린 끝에 ‘국민 마라토너’란 애칭까지 얻었다.

그는 가장 아쉬운 대회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꼽았다. 레이스 도중 다른 선수와 부딪쳐 넘어지며 24위로 들어왔다.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도 그와는 인연이 없었다. “만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면…”이라고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마라톤을 일찍 그만뒀을지도 모르죠”라고 했다. 훈련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마라톤처럼 그는 꾸밀 줄 모르는 성격이다. 그에게 “올림픽 금메달보다 40번 넘게 완주한 것에 더 감동하는 팬들이 많다”고 말해줬다.

사점(死點).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은 죽음 같은 고통의 지점에서 이봉주는 “지금껏 훈련해 왔던 순간을 생각한다”고 했다. 한 번의 레이스를 위해 마라토너는 석 달 전부터 매일 30~40㎞를 달린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7월부터 그렇게 준비했다.

94년부터 이봉주를 지도해 온 오인환 감독은 “대회를 한 번 치르기 위해 3500~3800㎞를 달린다. 완주하지 못한 두 번을 더하면 이봉주는 그걸 40번도 넘게 한 셈”이라며 “성실함과 끈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 한국 마라톤은 암흑기다. 이봉주 뒤를 이을 만한 재목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봉주의 생각은 달랐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선수도, 지도자도, 육상연맹도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삼성전자 육상단은 이봉주에게 코치직을 제의했다. 하지만 그는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이봉주는 동국대에서 체육학 석사학위 논문만 남겨 놓고 있다. 이론적 지식을 쌓은 뒤 현장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겠다는 계획이다.

21일 선수로서의 마라톤 인생은 막을 내리지만 이봉주는 “이제 막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반환점 이후의 인생은 역량 있는 꿈나무들을 발굴해 세계 정상의 마라토너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이해준 기자

▶출생=1970년 충남 천안 ▶체격=168cm, 57kg ▶혈액형=A 형 ▶별명=봉달이 ▶가족=부인 김미순씨와 사이에 2남(7세·5세) ▶취미=골프(2007년 시작·90타 수준) ▶애창곡=‘나는 문제없어’ ▶나를 있게 한 사람 둘을 꼽자면=어머니 공옥희씨·오인환 감독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 2위>>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 >>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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