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토]
그래서 ‘봉달이’ 이봉주(삼성전자 육상단)는 처음 시작했던 곳에서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다. 이봉주가 21일 대전에서 열리는 제90회 전국체전 남자 마라톤에 충남 대표로 출전한다. 이날 레이스는 이봉주 마라톤 인생의 피날레다.
1990년, 스무 살 청년 이봉주는 충남 전국체전(대전)에서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다. 그 후 40번 마라톤을 완주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등 이봉주의 인생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지난 3월 서울국제마라톤을 끝으로 이봉주가 은퇴한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이봉주는 그가 첫 발을 내디뎠던 전국체전에서 41번째 완주하고 은퇴식을 치르기로 했다. 마지막 레이스를 하루 앞둔 20일 대전에서 그를 만났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죠. 다른 대회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시작만큼 끝도 중요하니까요.”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이봉주에게 1등을 원하는지 묻자 “선두권에서 달리고 싶다”고 답했다.
이봉주는 황영조와 동갑내기다. 황영조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금세 시들었지만 이봉주는 무궁화처럼 피고 지고 또 피었다. 묵묵히 달리고 또 달린 끝에 ‘국민 마라토너’란 애칭까지 얻었다.
사점(死點).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은 죽음 같은 고통의 지점에서 이봉주는 “지금껏 훈련해 왔던 순간을 생각한다”고 했다. 한 번의 레이스를 위해 마라토너는 석 달 전부터 매일 30~40㎞를 달린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7월부터 그렇게 준비했다.
94년부터 이봉주를 지도해 온 오인환 감독은 “대회를 한 번 치르기 위해 3500~3800㎞를 달린다. 완주하지 못한 두 번을 더하면 이봉주는 그걸 40번도 넘게 한 셈”이라며 “성실함과 끈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 한국 마라톤은 암흑기다. 이봉주 뒤를 이을 만한 재목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봉주의 생각은 달랐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선수도, 지도자도, 육상연맹도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삼성전자 육상단은 이봉주에게 코치직을 제의했다. 하지만 그는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이봉주는 동국대에서 체육학 석사학위 논문만 남겨 놓고 있다. 이론적 지식을 쌓은 뒤 현장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겠다는 계획이다.
21일 선수로서의 마라톤 인생은 막을 내리지만 이봉주는 “이제 막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반환점 이후의 인생은 역량 있는 꿈나무들을 발굴해 세계 정상의 마라토너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이해준 기자
▶출생=1970년 충남 천안 ▶체격=168cm, 57kg ▶혈액형=A 형 ▶별명=봉달이 ▶가족=부인 김미순씨와 사이에 2남(7세·5세) ▶취미=골프(2007년 시작·90타 수준) ▶애창곡=‘나는 문제없어’ ▶나를 있게 한 사람 둘을 꼽자면=어머니 공옥희씨·오인환 감독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 2위>>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 >>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