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프간 재정 지원 확대 전향적으로 검토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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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의 재정적 지원을 기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오늘 방한하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수행 중인 제프 모렐 대변인은 그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군사 지원이 어렵고 정치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나라들은 적어도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평화와 안정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모든 나라는 아프간 지원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는 말도 했다. 한국으로부터 아프간 파병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고 보고, 금전적 지원이라도 더 얻어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본다. 미국의 아프간 전략 자체가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현지 사령관은 대규모 병력 증파를 요구하고 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결정을 못한 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월남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철군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아프간 전략 자체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에서 동맹국에 파병 요청을 하기가 어렵게 돼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아프간 파병은 ‘뜨거운 감자’다. 동맹국으로서의 의리도 의리지만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의 의무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내놓고 군사적 기여를 요구하긴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먼저 재정적 기여 쪽으로 가닥을 잡아줌으로써 한국 정부의 부담을 덜어준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사실 아프간에 대한 재정적 기여에 관한 한 한국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올해부터 2011년까지 아프간 재건을 위한 지원 규모를 당초 계획했던 3000만 달러에서 7410만 달러로 늘리기로 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아프간전 개전 이후 2011년까지 한국이 지원을 약속했거나 지원한 돈은 1억3000만 달러로 국제사회의 지원 약속 및 집행액의 0.14%에 불과하다. 일본은 약속한 20억 달러 중 17억9000만 달러를 이미 집행했다. 파병 문제는 일단 뒤로 제쳐놓는다 치더라도 재정적 지원만큼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