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한반도 평화회담 美대표 찰스 카트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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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5년 동안 한반도에는 위기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93~94년의 핵위기와 지난해 여름 이래의 미사일 위기, 북한의 식량위기가 던지는 불길한 그림자는 한반도의 전쟁방지와 현상유지를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게 만드는 불행한 사태를 초래했다.

이런 와중에서 위기해결의 미국인 3인방으로 핵위기 때의 로버트 갈루치와 페리 보고서의 윌리엄 페리와 한반도 평화회담대표 찰스 카트먼이 등장해 저마다의 협상능력을 발휘했다.

페리 보고서가 나오고 북한이 대포동2호 발사를 연기한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뿐 아니라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국무부 6층 동아시아.태평양국 안에 있는 집무실에서 카트먼을 만나 북.미관계의 전망을 들었다.

- 페리 보고서가 건의하는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회의 저항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의회의 반대로 대북정책의 수행이 사실상 어려워질 정도는 아닙니까.

"의회의 반대는 상당히 진지(Quite serious)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페리 보고서에 건의된 정책에 대한 반대인지, 북한에 대한 반대인지 구별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 속을 알 수 없는 북한은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페리 보고서에 대한 지지를 주저하는 것도 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불편한 심기의 잔재를 반영하는 것이지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에 대한 반대는 아니라고 봐요. "

- 내년 11월 대통령선거전이 벌써 시작돼 미국은 정치의 계절을 맞았습니다. 공화당이 대북정책을 선거의 쟁점으로 삼아 공세를 취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행정부는 의회가 요구하는 대로 다 했어요. 금창리 현지조사를 하고 미사일발사를 외교적인 방법으로 저지했어요. 의회는 대북정책을 계속 불안하게 생각할 것이고 행정부는 의회와 계속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것이지만 의회가 행정부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대북정책의 과격한 변화는 없을 걸로 봅니다. "

- 페리 박사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미국이 바라는 대로 바뀐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상대로 교섭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변하지 않는 북한을 전제로 한다면 미국의 목표달성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미국의 대북정책이 추구하는 목표와 그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어요. 우리의 목표는 북한과의 관계정상화가 아니라 북한의 행동을 바꾸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한의 위협적인 자세를 바꾸는 것이 미국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입니다. 그 아래 순위의 변화는 정치.경제적인 관계정상화라는 수단을 통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

- 그렇다면 북한의 대미정책의 목표는 뭐라고 봅니까.

"관계정상화를 통해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전반적인 관계개선을 바라는 이유는 그들이 미국.한국.일본으로부터 개별적 또는 집단적으로 피해망상에 가까운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죠. "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대북투자를 북한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는 '판도라의 상자' 로 생각하는 일면도 있지 않습니까.

"북한은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면 위험도 따른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북한은 나진.선봉 같은 경제특구도 만들었어요. 북한은 당분간 외국투자 유치방법을 여러가지로 강구할 것이지만 강력한 통제를 늦추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역기능과 장애는 제거되지 않을 거예요. 투자를 하려는 쪽에서도 투자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투자의 전망을 알아보는 데 치중할 겁니다. "

- 김정일(金正日)의 지도체제는 안정됐다고 봅니까.

"알 수가 없어요. 우리는 김정일을 만나는 건 고사하고 그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어요. 내가 북한 외교부 부부장 김계관과 협상할 때 그는 나를 통해 클린턴 대통령이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이 누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그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

-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에 남북관계의 진전에 구애받지 말고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촉구합니다. 미국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가 분리(Delink)될 수도 있습니까.

"아주 조심해서 써야 할 표현입니다. 관계정상화라고 하지만 그게 무얼 의미합니까?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는 것? 대여섯개의 미국 회사가 북한과 거래를 하는 것? 아니면 몇 사람의 미국인 관광객이 북한에 가는 것? 아니면 그 이상으로 동북아시아의 안보상황이 바뀌는 것입니까?"

- 상당한 관계개선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 수준까지 가려면 핵과 미사일문제에 관한 협상이 성공해야 해요. 북한이 외국 회사들과 일할 줄도 알아야 해요. 그런 일은 남북한의 직접대화를 통해 한반도에서 긴장의 수준이 줄어드는 배경에서 진행돼야 해요. 페리 박사와 우리는 이제 문을 열고 북한더러 함께 들어가자고 권유하고 있는 겁니다. "

- 미국 의회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비준을 거부한 것이 북.미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핵문제에 관한 북.미협상은 구체적이라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전면적으로 준수하게 되고 CTBT 규정대로 핵실험을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

-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페리 보고서는 핵과 미사일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남북대화의 재개 같은 데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데요.

"페리 박사와 우리 생각으로는 한반도의 안정을 깨고 대단히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요소가 세가지 있어요. (1)핵과 (2)미사일과 (3)정전체제의 유지에 필요한 재래식 억제력의 약화입니다. 그런데 재래식 억제력의 문제만은 4자회담에서 해결이 돼 지금의 체제로 가면 돼요. 이 세가지가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

- 최근 몇년 사이에 많은 북한인들이 미국과 호주와 중국으로 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공부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까.

"그런 북한인들의 숫자가 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 하나를 가지고 북한이 외부세계와 거래(Business)를 할 상당한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인지는 자신이 없어요. 서양의 경제적인 사고(思考)에 조금이라도 노출된 북한인의 숫자는 우리의 기준으로는 아직 너무 적어요. "

- 의회 청문회에서는 북한에서 굶어 죽은 사람의 숫자가 몇백만명이라는 주장이 나왔는데 국무부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모르지요. 그런 통계는 지난 몇년 사이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의 숫자를 모두 합친 것입니다. 그 중에는 영양실조로 얻은 다른 병으로 죽은 사람들도 포함돼 있어요. 그렇게 본다면 지난 3년 동안 1백만명이 죽었다는 통계가 이치에 맞는 것인지도 모르죠. "

- 카트먼 대사는 최근 북한이 현대와의 거래를 넘어서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낙관적인 전망의 근거가 있습니까.

"나는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한국과의 대화에 더욱 진지한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낙관해요. 북한은 현대와의 거래로 자신을 얻었어요. 엄격히 비료문제에 국한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1999년의 평양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북한도 올해로 어려운 시기가 마감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북한도 고난의 시기를 끝내는 데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해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밖에서 북한을 도울 나라는 중국과 미국입니다. 그러나 그걸로는 부족해요. 유럽연합(EU)과 호주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해요. 북한이 외교적인 활동영역을 크게 넓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김일성(金日成)이 사망한 94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긴 상중(喪中)이었는데 마침내 그게 끝나고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이 새로운 단계로 옮아가는 징조가 보입니다. "

- 중국은 충분히 협조하고 있습니까.

"올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金永南)이 중국을 방문했고 최근에는 중국 외교부장 탕자쉬안(唐家璇)이 평양을 방문했어요. 이런 일은 북한이 그리는 미래의 비전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대외관계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들입니다. 북한은 대외관계의 확대를 중국에서 시작할 것으로 봐요. "

- 페리 보고서에 대한 비판의 하나는 2개의 트랙(Two tracks)으로 돼 있는 대북정책에서 첫번째 트랙이 실패하면 두번째 트랙을 가동해 북한에 제재를 가한다는 것이지만 그 두번째 트랙의 내용이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첫번째 트랙을 발동해 북한더러 같이 앞으로 나아가자고 제의했고 북한도 그러자고 응답한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두번째 트랙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요. 페리 박사가 우리의 정책이 두개의 트랙으로 짜여 있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

-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워싱턴에 며칠 안에 옵니까, 몇주일 안에 옵니까.

"우리는 북한이 고위급 인사를 워싱턴에 보낼 의향이라는 것만 알 뿐 그들이 언제 누구를 보낸다는 통보는 해오지 않았어요. 북한으로서도 특히 누구를 보낼 것인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 같아요.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미국에 적대(敵對)해 왔어요. 50년 동안 그들의 대미자세의 바탕이 된 이데올로기를 제치고 협상대표를 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어요. "

- 앞에서 2003년에 공화당정부가 들어서도 대북정책의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희망사항입니까, 구체적인 근거가 있습니까.

"나는 정부 관료로 공화당 행정부에서도 일했고 민주당 행정부에서도 일했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의 정책에는 공통되는 게 많아요. 그 중 하나는 한국과의 확고한 우호동맹 위에서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겁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92년 북한에 화해를 제의한 바 있어요. "

- 지금 북한과 미국 중에서 어느 쪽이 시간을 벌고 있습니까. 시간은 누구의 편입니까.

"시간을 번다는 생각은 이제는 낡은 사고의 산물입니다. 이유를 말하지요. 시간벌기 싸움에서 북한이 지면 그건 북한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아닙니까.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

- 초대 북한 주재 대사에 임명된다면 환영하겠습니까.

"대사 임명은커녕 연락사무소를 대사관으로 승격시킬 것인가도 아직 모르는 형편인 걸요. "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만난사람 =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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