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주세율 내리면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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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마련한 주세율 개정안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정부가 확정한 주세율은 80%인데 이를 인하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내년에 있을 선거에 득표율을 올려보자는 심산에서 나온 발상 같다. 어쨌든 소주세율을 80%에서 60%로 내리면 우선 소주를 즐겨마시는 서민대중이 좋아할테고 무엇보다 주류업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60%로 할 경우 나타나는 부정적인 파장도 적지 않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요청에 따라 우리는 소주와 위스키 세율을 같이해야 한다. 따라서 소주세율을 60%로 낮추면 위스키 값은 상대적으로 더 내려가 위스키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소주 소비량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현 4억달러인 위스키 국내 소비량이 훨씬 늘어나고 이는 국내 주류업계를 붕괴일로의 길로 몰고가는 우(遇)를 범하게 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 누구를 위한 주세율의 인하인지 한번쯤 생각해보자. 주세는 재정이론에서 피구(Pigou)적 조세다.

즉 술은 마약.담배와 함께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외부성(강도.살인범죄.술주정.기물파괴 등)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내부성(폐렴.위장병.간암 등 각종 주류관계 질병)을 발생시키므로 고율과세를 통해 이러한 사회악을 억제해야 한다는 조세이념을 주세는 담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고율의 주세율 적용이 아무 저항없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주류가격에서 점하는 주세의 비율이 선진국은 60%에 이르고 있으나, 우리는 주세율이 80%인 경우에도 주류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0%에 지나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주세율까지 인하하면 주세비율은 더욱 떨어져 선진국에 비해 엄청난 격차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선진국의 주류세제 운용체제와는 정반대의 길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주세율 인하요구는 결국 한국 주류시장에 양주를 더 팔아 이득을 챙기겠다는 심산이다.

사실 아무리 술값이 비싸게 올라도 마실 사람은 마시게 마련인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술을 많이 마시는 우리 사회에서(인구 1인당 증류주 음주량에서 한국이 세계 2위) 음주로 인한 질병치료를 위해 국민보건 예산은 증가되며, 이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일반 납세자들의 조세부담으로 전가된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세수면에서 봐도 그렇다. 주세율 인하에 기인되는 세수차질은 필경 적자재정을 초래할 것이며 이를 보전하는 국채가 추가로 발행될 것이다. 이 또한 술을 마시지 않는 다른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될 게 뻔하다.

일부 술 좋아하는 사회집단의 욕구를 수용해 다른 무고한 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가게 된다면 사회 정의면에서도 수용될 수 없는 처사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높은 소주세율은 음주자들의 비용을 내부화해 스스로 부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하므로 자원배분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세율도 우리의 경제행동을 규제하는 하나의 사회룰(rule)인 이상 자주 바뀌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회룰은 사회고정자본으로 역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권 차원에서 득표를 목표로 이용되는 수단이 돼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증류주 세율의 인하는 주류산업보호를 위해, 나아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음주의 사회적 부작용을 억제하기 위해 용인될 수 없는 반사회적 행태라고 본다.

이필우(조세정의를 위한 한국납세자연합회장.전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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