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한집'의 수수께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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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제8보 (153~172)]
黑.이창호 9단 白.이세돌 9단

이희성5단은 지난 10년간 거의 묻혀 지냈다. 지지부진한 성적 탓에 내세울 만한 경력도 없었다. 한국기원 3대 장고파로 꼽히며 '진드기'라는 영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은 게 고작이었다(지난해 조금 살아나는 기미가 있었다).

그런 이희성을 한국리그의 '피더하우스'팀이 4장이나 3장도 아닌 주장 다음의 2장으로 지명하는 바람에 모두 놀랐다. 바둑계 실정을 잘 몰라 그렇다며 피더하우스를 동정하기도 했다. 한데 그는 이때부터 연승가도를 달렸다. 한국리그의 내로라 하는 쟁쟁한 2장들을 꺾으며 이름을 날리더니 신예들만의 TV속기대회인 오스람코리아배에선 후지쓰배 우승자 박영훈마저 제치며 결승까지 도약했다. 4월 이후 무려 21승3패, 승률 88%.

이희성은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자신을 2장으로 지명해준 팀이 고맙다는 말도 거듭 했다. 자신감이란 이토록 위력적인 것일까. 장고 탓에 밥 먹듯 초읽기에 몰려본 것이 TV속기에서 큰 도움이 되었으니 이것도 일종의 새옹지마였다.

상변의 길고도 피곤한 절충이 끝났으나 바둑은 여전히 팽팽하다. 이세돌9단이 돌연 하변에서 172라는 교묘한 한 수를 던졌다.

172는 '참고도' 흑1로 이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묻고 있다. 1로 이으면 장차 백은 A를 선수할 수 있어 한집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집은 그대로 승부에 직결될 수 있는 천금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창호9단은 한집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고개를 비튼 채 장고로 빠져들었다. 한집을 향한 긴박한 대결 속에서 문득 전운이 짙어지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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