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교육현장] 3. 초점잃은 고1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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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기도 안산시 D고 1학년 張모(16)양은 학교를 두곳에 다닌다. D고에서 귀가해 오후 8시쯤 흔히 '작은 학교' 로 불리는 학원에 등교, 수업 후 오후 11시30분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張양 같은 고1은 '전형방법을 다양화하는 등 대학입시를 개혁, 고교교육을 정상화한다' 는 취지로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2002학년도 '무시험 대입 전형' 이 적용되는 첫 대상자들이다.

張양은 "내신경쟁이 치열해 불안한 데다 대입제도가 언제 또 달라질지 몰라 학원에 다니지 않을 수 없다" 고 말했다.

교육부는 고1의 경우 '입시교육 열기' 가 크게 줄고 특기.적성교육이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경우 입시 위주 보습학원이 지난해말 3천4백여개에서 9월말에는 3천5백여개로 1백50개 증가했다.

서울S고 1학년 담임교사는 "학생 51명 가운데 38명이 학원.개인과외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 말했다.

올해 초.중.고 학생들의 과외비 규모는 지난해(11조9천여억원.한국교육개발원 조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고교 교육 개혁도 곳곳에서 삐걱거린다. '지필고사 위주 평가에서 탈피, 토론 등 다양한 평가방법으로 창의성.특기교육을 살리자' 는 취지로 올해 도입된 수행평가는 과도한 숙제로 변질돼 '고행평가' 로 불리고 있다. 또 수행평가용 숙제를 대신해주는 보습학원도 등장, 성업 중이다.

서울 Y여고 金모(36)교사는 "학급당 학생수가 40명에 이르는 등 열악한 교육여건으로는 교사들이 수행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고 말했다.

때문에 2학기 들어서는 총점 가운데 수행평가 반영비율을 1학기의 20~30%에서 10%대로 낮추고 반영방법도 등급제로 전환하는 등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고교가 늘고 있다.

이와 함께 교육부가 올해 고1부터 교육정상화란 취지 아래 교과목 학업성취도(수.우.미.양.가)를 완전 절대평가로 매기자 쉽게 출제하기 등 '성적 올려주기' 파동이 교육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달 전국 1천9백여 고교 중 1천1백여곳을 대상으로 올 1학기 성적을 조사한 결과 10.3%인 1백17곳이 성적을 부적절하게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성적을 부풀린 고교를 문책하겠다고 했지만 올 2학기 중간고사 결과 서울 H고는 1학년 수학과목 평균이 88점(지난해 78점)을 기록하는 등 성적 올려주기 현상은 여전하다.

반면 경기도 비평준화 고교인 A고의 경우 올 2학기 고1 수학 평균이 60점대로 나타나자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에 찾아가 "다른 학교는 쉽게 내는데 왜 어렵게 출제해 아이들 장래를 망치려 드느냐" 며 항의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성적 부풀리기는 학생의 학교불신과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한 고1 학생은 교육부 홈페이지 소리함에 "성적 인플레가 심해 시험 전날 게임방에서 밤을 지새는 학생이 과반수 이상이고 학생들은 학교를 가볍게 본다" 는 내용의 글을 실어 놓았다.

서울 S고 張모 교장은 "고1 교실을 보면 수업 도중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아 복도에 서있거나 엎드려 자는 학생이 절반 이상인 경우도 있으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학생조차 있다" 고 걱정했다. 학교에서는 쉬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張교장이 "정상적인 학업 성취도에 못 미치는 고1이 3분의 2는 될 것" 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1의 학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입시전문기관인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지난 3월말 서울 등 5개 지역, 7개 고교 1년생을 대상으로 국어 등 4개 과목의 표준학력검사를 실시한 결과 88년(동일 고교 평가)에 비해 1백점 만점 기준으로 평균 8.7점(88년 64.9점, 올해 56.9점) 낮아졌다.

이에 따라 대학들이 수능 대신 학교생활기록부와 추천서.봉사활동 등 비교과 자료를 주로 활용키로 한 2002학년도 대입도 도전을 받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는 최근 학교현장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2002학년도 대입 전형자료로 활용될 학교교육의 문제점으로 ▶비현실적인 수행평가▶절대평가에 의한 성적 부풀리기▶비교과자료 평가의 공정성 상실 등을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2002학년도 대입에서 평가방법의 공정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2학년도 대입에서 수능을 합격 결정 자료로 쓰지않고 지원자격으로만 활용하는 서울대를 비롯 연세대 등 많은 대학들이 '공정한' 전형자료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 '

더욱이 대학들이 올 3월 2002학년도 대입 전형방법을 개략적으로 밝히긴 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대입개혁을 둘러싼 혼선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대입개혁의 혼선은 바로 고교 교육의 파행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오대영.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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