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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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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세계 최대 맥주 축제다. 브라질의 리우카니발, 일본 삿포로 눈꽃 축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축제의 원형인 경마 대회가 열린 것이 1810년 10월 17일이었으므로 전쟁·콜레라 등으로 빼먹지 않았더라면 올해로 200회 행사가 될 뻔했다. 얼마 전 끝난 올해 축제(176회)엔 570만 명이 찾았다. 지난해보다 30만 명 줄긴 했으나 테러 위협, 신종 플루, 경제위기 등 3대 악재를 감안하면 성공작이었다는 평이다. 더구나 이들이 마신 맥주는 지난해와 비슷한 650만L, 먹어 치운 소는 7마리 많은 111마리나 됐다. 축제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렸기 때문이라는 게 주최 측 분석이다.

옥토버페스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몰려든 미군 덕분이다. 미국 관광객이 뒤를 이었고, 유럽 전역과 호주·일본의 관광객도 곧 진면목을 알게 됐다. 외지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마스(1L짜리 잔) 단위로 파는 맥주와 축제 벌판의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북적이는 천막 안에서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며 호탕하게 맥주를 들이킨다. 한쪽에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무절제한 환각제 파티’라고 비아냥대지만 방문자들은 의식을 치르듯 축제를 받든다.

바로 이런 요소 때문에 이 축제는 독일 최대의 컬트(Cult)로 불린다. 컬트는 사전적 의미로 ‘과도한 숭배 행위 혹은 보호 육성 행위’다. 숭배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나 영화, TV 시리즈, 각종 행사가 될 수도 있다. 빈오페라무도회,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즈, 할리데이비슨·애플컴퓨터·롤렉스시계 등이 바로 컬트다. 대상의 흠결까지 기꺼이 받아들이며, 수년 이상 지속적이고 능동적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컬트가 된다. 경제적 효과야 말할 필요가 없다(클라우스 슈메, 『컬트 팩터』)

우리나라에도 세계인의 컬트가 있을까. 한국은 반도체·자동차뿐 아니라 한식·종교·온돌, 태권도·폭탄주·신도시·드라마, 성형수술·온라인게임·증권거래소·경제발전경험, 얼마 전부터는 한글까지 수출하는 나라다. 지난주엔 미국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공동 제안한 기술이 모바일 TV 표준으로 채택돼 ‘기술 표준’ 수출의 새 장을 열었다. 세계인이 숭배하는 컬트로서 싹수를 보이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밀어줄 때가 됐다.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