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팔만대장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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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성악 전공자들을 주역으로 내세운다고 '오페라 같은 뮤지컬' 이 만들 수 있을까. 또 사물놀이 리듬과 처용무를 삽입한다고 '한국형 뮤지컬'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는 11월 8~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을 앞두고 지난 19~20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무대 리허설을 겸한 시연회를 끝낸 극단 현대극장의 뮤지컬 '팔만대장경' (극본 김의경, 작곡 김선하, 연출 이종훈)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현대극장이 뮤지컬 '장보고' 에 이어 해외시장을 겨냥해 만든 이 작품은 '명성황후' 의 주역가수로 활약했던 소프라노 김원정(묘화 역), 신세대 성악가 소프라노 임유진(연이 역).베이스 여현구(만전 역).테너 현광원(비수 역)을 캐스팅해 적어도 가창력에 있어서는 남부럽지 않은 무대가 될 것으로 처음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줄거리는 몽고군의 침입에 맞서 싸우던 고려인들이 팔만대장경을 제작해 호국의지를 다진다는 내용에다 삼각관계로 끝내 슬픈 최후를 맞는 사랑 이야기를 대입시킨 것. 대규모 군중이 등장하는 서사극과 주역들이 꾸며가는 멜로 드라마를 교차해 가는 과정에서 비록 무대장치는 빈약했지만, 회전 무대를 이용한 빠른 장면 전환을 통해 극적인 완성도는 어느 정도 확보한 셈이다. ' 대사(大師)역의 김진태 등 중견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도 작품을 잘 지탱해 주었다.'

하지만 합창과 독창(또는 중창)의 음악적 단절감은 컸다. 그나마 기억에 남을 만한 넘버는 피날레 합창 '아 팔만대장경은 부처님 말씀' 정도였다.

독창이나 사랑의 2중창 부분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디즈니 주제가 풍의 흔적이 발견되다가도 ' 한국적인 선율' 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음역이나 선율 면에서 성악가들의 가창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었다.

스토리 텔링에 충실하다보니 주인공마다 노래 하나씩 나눠 가진 것 뿐이고 각각의 음악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돼 흐르는 맛은 덜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와 음악이다.

주역으로 출연한 성악가 출신 가수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이 드라마의 흐름 속에 잘 용해됐다.

하지만 애초에 의도했던 탁월한 가창력과 음악적 카리스마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베이스 여현구는 무대를 압도하는 신체 조건과 중후한 발성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뮤지컬로 소화하기에는 발성이 무거운 편이었다.

오히려 음악의 섬세한 표정을 살려낸 것은 테너 현광원이었다.

또 연이 역을 맡은 소프라노 임유진은 노래와 연기 면에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주었다.

소프라노 김원정은 프리마돈나의 음악적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발휘했으나 대사 전달에 다소 무리가 있었다.

조셉 베이커의 신시사이저나 전자피아노 위주의 편곡은 다소 식상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만전이 묘화를 추행하는 대목을 바라춤과 처용무.승무로 상징적으로 처리해 볼거리와 극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공연개막 오후 7시30분. 금.토.일 오후 3시30분 추가. 02-762-6194.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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