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부당한 오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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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35면

몇 년 전 낯선 팬의 편지 한 통을 받아 들고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조심스레 열어봤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녀는 얼마 전 다녀온 교회 수련회에서 자신을 지도한 전도사의 얘기를 들려줬다. 학생은 굉장한 혼란과 고민에 빠져 있었다. “뉴에이지 음악은 사탄의 음악이며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은 뒤 자신이 그렇게도 아끼고 즐겨 듣던 뉴에이지 음악을 계속 들어도 될지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뉴에이지 음악’을 검색하면 이런 고민에 빠진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뉴에이지 음악이 사탄과 악마를 숭배한다는 것은 지극히 왜곡된 이야기일 뿐이다.

도대체 뉴에이지 음악은 왜 이런 인식을 얻게 됐을까? 20세기 초 서양에서 자연주의 운동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동양의 문화, 특히 인도의 명상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뉴에이지 운동이 생겨났다.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에서 파생된 것이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알려져 왔다. 명상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즉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여기는 자연주의 사상이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단으로 취급되면서 뉴에이지 음악마저도 반감을 사게 된 것이다. 명상에 필요한, 명상을 위한 음악을 뉴에이지 음악으로 규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흔히 ‘뉴에이지’라고 불리는 음악이 모두 명상을 목적으로 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가장 큰 예를 들자면 미국의 음반 레이블인 윈드헴힐 레코드의 조지 윈스턴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사계’ 시리즈, 특히 ‘디셈버(December)’는 미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음악은 자연을 담고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이 아름다운 자연을 풍미하며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그저 음악으로 표현한 것뿐이었다.

솔직히 뉴에이지 음악을 하나의 장르라고 일컫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나도 넓다. ‘뉴에이지’의 범주에 묶인 음악인들이 만들어낸 음악은 무척 다양하기 때문이다.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순수하고 깨끗한 색채를 띠고 있는 뉴에이지 음악에 매료된 음악인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팝’ 음악 안에 세분화된 여러 장르가 나열돼 있듯 뉴에이지 음악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음악들이 포함돼 있다.

클래시컬한 악기로 많이 연주된다는 이유로 클래식 음악 장르로 분류되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야니’처럼 연주로만 이뤄진 음악을 ‘팝 인스트루멘털(Pop Instrumental)’이라고 하고, 그룹 ‘엔야’는 ‘퓨전’ 또는 ‘켈틱 퓨전(Celtic Fusion)’이라고 말한다. 더 자세하고 더 세밀하게 장르를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이지 리스닝’ ‘세미 클래식’ ‘네오 클래식(Neo-Classic)’이라는 단어까지 나온 것은 이 음악들이 종교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 대중적이면서도 클래시컬한 깊이가 있는 음악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뉴에이지를 뉴에이지 운동, 혹은 명상과 접목시키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수많은 장르를 혼합해 선보이는 음악까지도 ‘뉴에이지’라는 하나의 장르에 묶어 넣는 데 있다.

조지 윈스턴, 앙드레 가뇽, 유키 구라모토 그리고 나 역시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음악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보급되면서 피아노 음악은 많은 인기를 얻었다. 문구점이나 책방에서 팔던 ‘피아노 피스’, 즉 악보를 구입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열심히 연습하던 시절이 기억난다. 그때는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을 때였다. 그냥 음악이 좋고 멜로디가 아름다워 즐겨 연주했을 뿐이었다. 지금 와서 잘못된 인식 탓에 대중이 쉽게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음악을 종교적인 의미로 퇴색시키고 혼란을 주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음악을 듣고 음악을 받아들이는 대중이, 음악을 쓰고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인의 마음과 감성까지도 진정으로 공감하면서 받아들인다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잘못된 시선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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