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4. 소설 - 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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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줄거리

유전자 조작을 통해 몸에서 사람의 귀가 자라나는 쥐가 개발됐다는 뉴스를 접한 나는 10년여 전 '갑을고시원'에서 지냈던 2년간을 떠올린다. 쥐 등의 귓속 달팽이관에는 달팽이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귓속 달팽이관 같은 고시원 복도 끝방에서 인간도 살았다. 1991년 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나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친구집 눈치밥을 못견디게 된 나는 싼 맛에 고시원에 찾아든다. 하지만 고시원의 방들은 딱 관(棺)만한 크기다.

우선 의자를 빼 책상 위에 올려야 겨우 발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다. 복도의 폭은 40㎝, 방들은 1㎝ 두께의 베니어판으로 나누어져 있을 뿐이다. 정작 고시생은 한명뿐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관'안에서 소리 죽여 방귀를 뀌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자위를 한다. 당시 내게 인생은 고시(考試)처럼 느껴졌다. 10년이 지나고 보니 나는 고시원이 아쉽다.

<'현대문학' 2004년 6월호 발표>

◇ 약력
-1968년 경남 울산 출생
-2003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2003년 한겨레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갑을고시원 체류기'

소설가 박민규씨는 지난해 장편소설 두 권을 냈을 뿐이지만 기존의 소설문법과 다른 새로운 글쓰기로 주목 받아왔다. 박씨의 새로움에는 그의 독특한 캐릭터도 일조했다. 밴드 멤버를 연상시키는 치렁치렁한 생머리, 툭툭 던지는 무뚝뚝한 말투,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선보여온 거침없는 화법 등 그는 여러 모로 달랐다.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갑을고시원 체류기'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건 지난 24일 오후. 그는 자고 있었다. 보통 오후 4~5시 사이에 일어나 밤새 글을 쓴 후 이튿날 오전 7~8시쯤에 잠든다는 설명이었다. 작가들에게 올빼미 생활은 일반적인 생활리듬이다. 그러려니 했다. 놀란 것은 다음이었다. 박씨는 자신의 작품이 수상 후보에 오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뉴스가 그 뉴스 같아 인터넷 헤드라인만 가끔 훑어볼 뿐 신문.TV를 잘 보지 않기 때문"이었다.

"관처럼 작은 고시원 방에서 생활해 본 적 있느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딱히 고시원은 아니지만 작은 방 경험은 많다. 돈 없으면 그런 데서 생활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알고 있다. 고시원에 고시생은 없고 여인숙화된다는 얘기를 듣고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냐"고 조금 세게 밀어봤다. '인생은 고시''실패 후 돌아가 쉴 수 있는 고시원' 등 소설 뒷부분의 메시지들은 계몽적인 냄새가 나는 '건전한' 것들이다. 박씨는 "특별한 메시지 없다. 감상은 독자의 몫"이라고 답했다. 박씨는 또 "소설도 가전제품과 다를 게 없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내 소설이 그런 즐거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편소설에 매진하던 2000년 초, 한 선배가 "그러는 거 아니다, 단편부터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박씨는 "무언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2001~2002년 사이 단편을 30편쯤 썼다"고 했다.'갑을고시원 체류기'도 그 무렵 쓴 것이다. 문학평론가 최혜실씨는 "가난에 지쳐 좁아터진 쪽방에서 생활하는 소설 속 사람들의 모습은 사람 귀가 돋아나는 쥐와 대비돼 인간이 기호.코드로 표시되는 포스트 휴먼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영상매체를 연상시키는 구술 방식도 박씨 소설의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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