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조선후기 영모화'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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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바라보며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그려지는 대상을 일상 생활에서도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 "일상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에서 깊이 음미하고 즐길 만한 그림이 탄생한다" 고 하면 어떨까.

우리 옛 그림 중에서도 화조(花鳥)도나 영모(翎毛:길짐승과 날짐승)화를 보면 평소 정성스레 화초를 가꾸고 동물을 기르던 조상들의 생활이 그대로 녹아있음에 탄복하게 된다.

지난 17일부터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에서는 가을 정기전시로 조선시대 후기 영모화를 보여주고 있다. 출품된 60여점 모두 궁정화가인 화원(畵圓)의 작품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화원들은 신분상으로는 중인에 속했지만, 실제적으로 모든 생활을 궁궐에서 왕족.사대부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당시로서 고급 취미에 속하는 동식물 키우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영모화 그리기가 가능했고, 화원들은 사대부 못지 않은 풍취와 기량을 뽐냈다.

영모화는 '동물의 초상화' 로, 세밀하고 전문적인 묘사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직업화가인 화원에게 걸맞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단원(檀園)김홍도와 혜원(惠園)신윤복.오원(吾園)장승업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선 후기 화가들이 모두 화원 출신이다.

전시에는 16세기 후반부터 조선 최후의 화원 심전(心田)안중식의 작품까지 두루 망라돼 있다.

문화의 융성기답게 동물들의 모양새에 넉넉함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고구마를 타고 올라 뜯어먹는 통통한 쥐(최북), 활짝 핀 꽃 앞에 한가로이 앉아있는 살찐 고양이(변상벽.김홍도), 벼슬을 힘차게 돋우고 꼬리깃털을 화려하게 올려세운 닭(변상벽)등은 "살림살이가 여유로웠던 시대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 이라는 게 최완수 연구실장의 설명이다.

이는 양치는 신선 고사를 소재로 한 이인문의 그림에서도 드러난다.

"좋은 시절이 오래되다 보면 신선처럼 불사(不死)를 원하는 마음이 강해지게 마련" 이라는 것이다.

한편 기록자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던 화원이니만큼 사신과 함께 파견돼 낙타와 같은 외국의 희귀한 동물을 그려오기도 했다.

또 장승업처럼 한번 보고 그대로 재현해내는 모사 능력이 탁월한 화가도 있는 반면 동물을 통해 자신만의 시정(詩情)을 마음껏 표출한 단원같은 인물도 있어 서로 비교해봄직하다.

소위 '진경시대' 라 부르는 영.정조 재위기가 끝나고부터는 그림에 생기가 사라지고 움직임 역시 둔하고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역시 문화예술과 시대상황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실감케 한다. 31일까지. 02-762-0442.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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