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TBT案 부결 파장] 핵확산 방지에 핵탄급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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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3일 미 상원에서 부결된 핵실험전면금지조약(CTBT)비준안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적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핵확산 억지노력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가했다.

지난 한주일 동안 영국.프랑스.독일 정상들이 비준을 촉구해온 반면 역대 백악관 안보보좌관들이 비준에 반대하는 공동기고문을 주요 언론에 게재하는 등 미 상원의 CTBT 비준 여부를 둘러싸고 미국 내외를 넘나드는 찬반논쟁이 관심을 끌어왔다.

그러나 표결을 앞두고 백악관.민주당 지도부와 상원 다수파 공화당 지도부간의 막바지 정치적 타협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3년여를 끌어온 비준안 논쟁은 부결로 결론지어졌고 백악관의 비준안처리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CTBT 비준안 부결의 파장은 미국 내외에 걸쳐 폭넓게 나타날 전망이다.

첫째, 공화.민주 양당 지도부간의 막판 타협과정이 말해주듯 내년말 대선을 앞두고 미국내 정치의 대립양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96년 9월 조약에 첫 서명한 국가원수로서 자신의 집권 2기 최우선 외교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한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가하려는 공화당측의 공세가 일단 성공했기 때문이다.

비준안이 부결된 직후 클린턴 대통령은 "철저하게 정치적 계산에 의해 희생됐다.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며 상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는 핵무기 실험을 동결하고 조약의 내용을 준수할 것이라고 다짐함으로써 국내 정치적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조약안에 대한 미국민들의 대체적 지지를 감안해 공화당측의 정치적 결정을 내년 대선 캠페인의 이슈로 삼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있다.

둘째, 냉전종식 이후 핵비확산을 외교정책의 우선 과제로 설정해왔던 미국이 대외적 권위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음으로써 중국.러시아 등 조약에 아직 비준하지 않은 핵무기 보유국가들과 인도.파키스탄 등 지난해 5월 이래 핵실험 경쟁에 돌입한 나라들의 추가 핵실험을 억지할 명분을 잃게 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이번 미 상원의 결정은 국제사회내 미국의 권위를 크게 손상시켰다.

조약안 자체가 지닌 문제점을 떠나 미국 스스로 주도해온 핵비확산 노력에 예상치 않은 기복이 있을 것" 이라고 우려했다.

국제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협상을 통한 군비통제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안전보장책을 강구하기 위한 군사억지정책에 비중을 두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셋째, 미국내 파장으로서 클린턴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입지 또한 좁아질 것이란 전망이 대두하고 있다.

임기 15개월을 남겨둔 클린턴이 의회내 힘겨루기에서 굴복함으로써 레임 덕 현상이 본격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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