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덩샤오핑의 큰 구상 작은 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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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치인으로서 덩샤오핑(鄧小平)만큼 축복받는 탄생 100주년을 맞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덩이 이런 영광을 누리는 것은 그가 남긴 업적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또 후한 후손들을 둔 덕도 있다. 아무리 뜻이 훌륭하고 노력이 많았다 하더라도 지금 결과가 안 좋았으면 덩은 변신의 천재, 천안문 탄압의 주범으로만 부각됐을지 모른다. 또 큰 공을 적게 보고 작은 허물을 크게 보았으면 이런 대접은 못 받는다. 1989년 6.4사태 그날 천안문 광장에서만 319명(중국 정부 공식 발표)이 죽었다.

탄생 100돌 기념 거창한 잔치

마오쩌둥(毛澤東)이 죽고 나서 덩이 다시 권력을 잡았을 때 정말 힘든 처지였다. 마오가 저지른 10년의 문화대혁명으로 나라 안은 엉망이 되었고 경제는 매우 어려웠다. 국제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었다. 갈가리 찢긴 나라를 수습하고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해야 했다. 또 천지에 가득 찬 한을 풀어주는 일이 급했다. 문화대혁명 때 횡포를 부린 4인방과 그 추종자들을 잡아넣고 억울한 사람들을 명예회복시키는 것은 비교적 간단했다. 문제는 역사평가였다.

악몽 같은 문화대혁명을 결산하려 하니 그 중심에 국부(國父) 마오가 있었다. 당시 실권자 중엔 덩을 비롯해 핍박받은 사람이 많았지만 마오를 격하하거나 그전의 역사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중국 인민 속에 자리 잡은 마오의 비중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3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갖는다. 그때 덩은 역사문제에 대해 세 가지 기본지침을 준다. 즉 마오 주석의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기본적으로 그의 공적을 평가할 것, 마오 사상의 계승을 확실히 할 것, 현대화의 추진과 단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할 것 등이다.

중국 공산당은 81년 6월 3만5000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결의를 채택하여 공식적으로 역사문제를 일단락 짓는다. 결론은 마오 주석이 문화대혁명으로 중대한 과오를 범했지만 전 생애에 걸쳐 중국 혁명에 대한 공적이 더 크기 때문에 공적이 먼저고 과오는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말년의 잘못과 역사적으로 형성돼 온 마오 사상을 구별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오 사상을 토대로 통치해온 나라나 자신들이 우습게 된다. 또 국부 마오쩌둥의 권위를 살리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단합시키는 데 유용하다.

역사문제는 그것으로서 일단 봉합해 놓은 다음 경제건설에 일로매진했다. 20세기 말인 2000년까지 국민소득을 1000달러로 올린다는 소득 4배증 목표를 제시한다. 그 추진과정에서 덩은 강력하고 노련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당시 중국에서 시장경제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회주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보수파와 과감히 바꾸려는 개혁파 사이를 오가면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다. 보수와 개혁을 같이 끌고 가기 위해서다.

기득권층을 바꾸기 위해 채찍을 휘두르기도 하고 개혁파의 질주를 막기 위해 브레이크도 건다. "개혁하지 않으면 활로가 없다. 그러나 개혁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적 안정과 질서유지가 필요하다"면서 강온(强穩) 양면전략을 구사한다. 어떤 땐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 같은 핵심 심복을 자르기도 하고 어떤 땐 탱크를 동원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론 보수, 경제적으론 개혁이란 두 얼굴로 중국의 현대화란 청사진에 한걸음씩 다가간다. 큰 구상 작은 걸음에 대단한 인내와 포용이다.

개혁·보수파 절묘한 균형 잡아

경제 제일주의를 직접 챙기면서 장애물들을 치워나갔다. 개혁 개방이 비판받을 땐 현지시찰 등을 통해 힘을 실어주고 미국과 일본을 방문해 큰 외교 현안을 해결했다. 좋은 투자환경을 만들고 홍보했다. 무엇보다 위대한 점은 중국의 현대화 과업을 이어 갈 후계구도를 일찍 준비한 점이다. 그 후계구도는 잘 작동되고 있다. 그래서 제시된 국가 목표는 달성되었고 거기다 탄력까지 붙고 있다. 덩샤오핑이 거창한 탄생 100주년 기념잔치를 받을 만하다.

지난 30년간 정치 발전과 경제 번영이라는 점에서 한국도 결코 중국 못지 않다. 그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고 중국이 한국을 학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100주년 잔치가 없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