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부족한 고려역사 구수한 강의처럼 엮어-'5백년 고려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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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역사를 살피려면 고대나 근세로 쉽게 손이 뻗친다. 현재의 연결을 생각하면 근세사요, 역사의 출발점을 찾으려면 고대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중세를 '암흑시대' 라 하는 한 가지 까닭일 것 같다. 한국사의 경우에도 고려사에는 연구자도 별로 모이지 않고 책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박종기 교수(국민대)는 이런 '사각(死角)지대' 의 특성 때문에 고려사가 역사학의 새로운 담론에 적합한 영역이라고 여긴다.

이번에 펴낸 '5백년 고려사' (푸른역사, 1만원)는 이런 지론에 따라 새로운 서술방식을 마음껏 시도해 본 책이다.

책은 "왜 고려사인가□" 하며 오늘의 문제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들부터 역사책으로는 파격이다.

그리고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식이 아니라 몇개의 주제로부터 시각(視角)을 잡는 '맥짚기' 식 서술이다.

박 교수가 꼽는 고려시대의 첫번째 특징은 '다원주의' 다. 신라의 골품제나 조선의 성리학 같은 획일적 기준이 고려에는 없었다.

다양한 전통과 가치관, 세력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또한 국가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와 제도 속에 통합되었다.

세계화의 물결 앞에 통일의 과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입체적 국가구조가 진정 소중한 전통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가르치는 일을 통해 학문의 틀도 다듬을 수 있었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구수한 말투의 강의를 녹취해 만든 이 책이야말로 '교학상장(敎學相長)' 의 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김기협 < 문화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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