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 바란다] "파병·BK21등 논조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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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앙일보의 보도내용과 편집방향을 짚어보는 독자위원회 9월회의가 27일 오후 본사 회의실에서 열렸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 토론에는 신구식(申坵植)위원장(무역협회 차장)을 비롯한 5명의 독자위원과 본지 문병호(文炳晧)편집국장대리. 이수근(李秀根)논설위원. 김두우(金斗宇)정치부차장. 민병관(閔丙寬)산업부차장. 이만훈(李晩薰)사회부차장. 허의도(許義道)문화부차장이 참석했다.

◇신구식〓먼저, 중앙일보가 창간 34주년을 맞아 글자 간격을 줄이고 지면 여백을 좁히는 등 체재를 개선해 정보 공급량을 늘린 것이 눈길을 끌었다. 9월 중 독자의 관심을 끈 기사로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 논의와 동티모르 파병,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BK21 논란 등이 있었다. 함께 논의해 보자.

◇김창남(金昌南)성공회대 교수〓창간 34주년 특집 중 국민의식 여론조사는 언론들이 기념일마다 실시하는 서베이가 대체로 그렇듯 상투적이지 않았나 싶다. 의식이나 여론에 관한 신문들의 조사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질문을 받는 시민들은 대부분 정치.사회적 사안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특별히 생각지도 않는다. 따라서 설문에 대한 응답도 깊이 있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조사 직전에 접한 언론 보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피상적인 응답을 '객관적인 수치' 로 종합해 제시하는 것은 자칫 여론을 잘못 반영하거나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보광그룹 세무조사건에 대해서는 두가지가 눈에 띈다. 우선, 중앙일보가 언론탄압이라는 시각을 가미해 이 사건을 다뤘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입장에서는 가질 수 있는 시각이나, 그 주장을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제시하지 않고 야당의원들의 입을 빌린 객관보도 형식으로 다룬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혐의내용 등 사실을 보도하는 데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느낌도 든다. 이번 일을 언론에 대한 압박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 자체가 객관적인 사실의 형태로 제기된 만큼 그에 상응한 좀 더 객관적인 보도가 필요했다.

◇신구식〓9월에는 중앙일보가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를 유난히 많이 쓴 것 같다. 전직대통령 초청모임에 이례적으로 JP를 불렀다는 기사와 청와대의 '때아닌 파티' 기사, 추석 전 국민회의 홍보물의 우선배달 관련기사 등이 눈에 띄었다. 혹시 보광 세무조사와 관련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하(曺王呈夏)여성민우회 미디어 사무국장〓신당 관련 기사에 깊이가 모자란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한다' 는 정책방향을 취재해 부각시킨 것은 좋았지만 심층적인 문제 제기를 못했다.

신당 창당과 자민련과의 합당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지, 자민련이 신당에 참여하는 경우 신당의 성격이 애매모호해지는 것은 아닌지, 국민회의 구조가 어떻길래 신당 창당이 필요한지, 왜 우리나라 정당들은 선거 때만 되면 이런 식의 영입 작업을 하는지 등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제2건국위의 문제점을 간헐적으로 지적하곤 하는데 이 사안을 정면으로 다루는 기사를 실었으면 한다. 제2건국운동은 현정부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보이므로 이쯤에서 중간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신구식〓9월 4일자 '글로벌 포커스' 는 '이제 우리 정당도 색깔로 경쟁할 때가 됐다' 는 내용을 싣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자칫 '국민회의-진보, 한나라당-보수' 구도로 몰아가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동티모르 파병과 관련해서는 사설.칼럼의 방향이 제각기 달라 헷갈렸다. 처음 사설에서는 '모두를 다 만족시키는 결정이 바람직하다' 며 뚜렷한 주장을 내놓지 않더니 9월 20일자 '분수대' 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썼고, 27일자 '데스크의 눈' 에서는 예전의 경험을 충분히 들은 뒤 결정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조정하〓정부의 두뇌한국 21(BK21)사업에 대한 중앙일보의 입장도 독자에겐 혼란을 준다. 9월 1일자 사회면 톱은 '특정대학 몰아주기' 란 제목 아래 비판적으로 보도한 반면 사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로 모순된다.

◇이정균(李貞均)일산성신초등학교 교사〓최근 중앙일보가 교육 관련 기사에 조금 소홀해진 것 같다. 대학 종합평가에 힘을 쏟느라 그럴 거라고 생각되지만 초.중.고교생들이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물론 그런 기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9월 16일자 사회면에 실린 '김포 사우.월드지구 고교생들의 통학전쟁' 기사나 같은 날 오피니언면에 한 초등학교 교사가 기고한 '민망했던 미술관 견학' 은 우리의 교육현실을 잘 보여주었다. '교실 붕괴를 막아야 한다' 는 내용의 칼럼도 좋았다.

◇정옥선(鄭玉仙)주부〓(개인사정으로 독자위원 일을 못하게 된 정승혜 주부 후임으로 위촉)서울대 실험실 화재사고는 단발성 사건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대학의 화학 실험실에 오래 있어 봤는데 실험실 환경이 너무 나쁘다. 좁은 연구실에 기자재는 자꾸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안전관리는 허술한 게 사실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짚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정균〓유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반도체 값이 뛰고 있다. 이런 현상이 우리 경제와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심층적으로 다뤄주었으면 한다. 예전의 오일쇼크와 어떻게 다른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등을 풀어 주면 어떨까. 체육면에 외국 진출 선수에 대한 기사가 너무 많다. 국내경기가 소홀히 취급되는 느낌이다.

심형래씨는 새 정부가 선정한 신지식인 1호로 아이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그의 영화 '용가리' 가 지금 어떻게 돼 있는지 궁금한데 후속기사가 안보인다. 파이낸스 관련 후속기사 역시 미흡하다.

◇정옥선〓주부들끼리 모이는 자리에서 신문들이 권희로씨를 지나치게 우상화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마치 일본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처럼 다룬 것은 지나쳤다. 중앙일보가 기획 연재한 '시장은 살아있다' 는 정보가 풍부하고 읽는 재미도 있어 주부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한가지 지적한다면 한약들을 소개하면서 오.남용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정하〓9월 6일자 중앙일보는 3면에 '시골 외딴섬에서도 위성방송 볼 수 있다' 는 제목으로 무궁화 3호 발사의 의미를 소개하는 한편 사설을 통해 통합방송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너무 하드웨어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케이블 TV의 실패사례를 염두에 두고 문화적 측면, 소프트웨어적 측면까지 고려해 다루는 복합적 접근이 아쉬웠다.

◇중앙일보〓여러분의 의견과 제안을 지면에 적극 반영하겠다. 창간 기념일마다 싣는 국민의식 조사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품을 많이 들이고 있다.

우리로선 '역작' 이라고 자부한다. 여론조사는 정치.경제.언론 등에 대한 '국민들의 피드백' 인 만큼 의미가 적지 않다. 물론 설문방법 등은 꾸준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용가리' 는 곧 후속기사가 나갈 것이다.

보광사건은 정치적인 사건이다. 단순한 세금탈루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이번까지 단 세차례뿐이다. 사건을 발표하면서 국세청이 내놓은 보도자료가 13장에 달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우리는 정부 발표가 이렇듯 일방적인 데 주목하고 있다. '보광그룹' 에 관한 발표라면서 제시된 10가지 사항 중 9가지가 중앙일보 사장 개인과 일가에 관계된 것이다. 이번 일이 언론탄압인지 아닌지는 역사가 말할 것이다.

정리〓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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