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선수들, 잦은 손가락 골절 "반지 낄 데도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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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러시아의 아나스타슬라야 이바노바가 발목을 삐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테네 AP=연합]

공중에서 몸을 몇 바퀴씩 돌리는 체조는 매번 모험이다. 찰나의 타이밍을 놓쳐 착지가 완벽하지 못하면 어느 부분인가를 다치게 마련이다. 바닥이 비록 쿠션이 있는 매트라지만 발목.무릎, 자칫하면 척추에 직격탄을 맞는다.

역도선수들은 자기들 손을 '곰 발바닥'이라고 말한다. 무거운 바벨에 쓸려 나무껍데기처럼 거칠고 두터워서다. 그래도 손은 보기 흉한 정도로만 그친다. 어깨.발목.무릎.손목 등의 부상은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허리가 성한 선수는 운이 좋은 경우다. 엄청난 무게를 무수히 들다 보니 '과(過)사용 증후군'을 피해가기 어렵다." 태릉선수촌 의무실에서 13년 동안 국가 대표선수들의 부상을 치료한 엄성운(45.현재 한마음 스포츠클리닉 대표)씨의 말이다.

그보다 더 부상에 노출되는 종목은 투기다. 복싱선수들은 망가진 코와 치열에 뇌 손상 위험이 늘 따른다. 레슬링선수의 귀는 상대의 몸과 매트에 하도 마찰이 돼 귓구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뭉개진다. 유도는 상대의 도복 깃을 잡으려다 손가락이 수도 없이 부러진다. 그래서 반지를 낄 수 있는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선수가 허다하다.

서로 몸을 부딪치는 구기 종목도 그렇다. 축구선수들은 무릎 연골이 다 닳거나 끊어져 주위의 근육으로 지탱하는 경우가 잦다. 아테네 올림픽에 와일드 카드로 선발됐다가 중도하차한 송종국과 프로축구 고종수가 대표적이다. 농구는 발목 삐는 일이 다반사다. 채 낫기 전에 운동을 하다가 만성 발목염좌가 된다. 핸드볼은 슛을 하다가 어깨가 빠지고, 점프슛한 뒤 무방비로 마룻바닥에 떨어지다 보니 역시 성한 곳이 없다. 하키는 다른 구기의 모든 부상에다 이번 올림픽에서의 이미성(여) 선수처럼 단단한 공에 머리를 맞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상대 선수와 충돌이 없는 경기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점프를 자주 하고 어깨를 많이 사용하는 배드민턴도 의외로 부상이 잦다. 아킬레스건 염증으로 고생해온 손승모는 이번 올림픽 결승전 2세트에서 통증이 재발해 다 잡은 금메달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겉으로 아픔을 호소하는 선수보다 자기만 알고 그냥 넘어가는 선수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부상 사례는 집계가 되지 않는다.

엄성운씨는 이렇게 말한다. "부상은 사소한 것이라도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신력만으로 싸운다는 건 옛날 얘기다. 현대 스포츠는 발달한 의술과 과학이 더해져야 최고의 성과가 나온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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