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로 수기 독점연재] 12.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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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0여년이 지난 지금 고국에 돌아와 새삼스레 당시의 '흉기반입사건' 등을 문제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악감정이 생기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도 일본 기자들이 계속 찾아와 진상을 캐묻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일을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묻어둘 생각이다.

매스컴의 추적으로 만의 하나 일본의 공권력이 재일한국인 수감자를 자살로 유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라도 한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가석방될 때 일본 법무성 당국에 "과거 일을 문제삼아 일본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고 서약서를 썼으며, 스스로도 미움을 넘어 일본과 화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 검찰이 '흉기반입사건' 과 구리타(栗田)간수의 자살을 어떤 식으로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아리타(有田)주임검찰관은 흉기반입건에 대해 '긴키로(김희로)가 담배 등 반입금지 품목을 감방에 넣어준 구리타 간수의 약점을 이용해 '공예품을 세공할 칼을 넣어달라' 고 요구했다. 야스리(줄)는 칼에 새겨진 글씨를 지우는 용도였다.

구리타 간수 혼자 저지른 일로, 다른 형무소 직원들은 상관이 없다' 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또 독약건에 대해서는 '입수 경로는 불분명하지만 조사결과 청산가리 같은 독극물은 아니었다' 고 주장했다.

화약건에 대해서는 '시즈오카(靜岡)형무소의 이케우라(池浦)관리부장이 긴키로에게 입수경로나 은닉장소 등을 캐물었지만 입을 다물고 있다.

'폭발물' 이란 것이 현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있었는지 어떤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신체에 위해를 가할 만한 위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고 썼다.

누가 보아도 웃을 만한 보고서였다. 당시 일본 검찰은 진상을 규명하기보다 덮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즈오카 형무소측은 내게 "검찰에 잘 말해 형(刑)을 가볍게 해줄 테니 '민족차별' 문제로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말고 살인행위에 대해 사죄하라" 고 설득하며 일종의 특별대우를 해줬기 때문에 구리타 간수가 담배 반입 때문에 약점이 잡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나는 담배뿐만 아니라 감방 안에서 형무소측이 마련해준 불고기판으로 고기를 구워먹었을 정도였으니까. 독약에 대해서도 조사결과만 발표했을 뿐 증거물도 보여주지 않았고 이케우라 관리부장이 폭약을 세면대에 흘려버린 사실에 대해서도 더 이상 추궁하려 들지 않았다.

사실 구리타 간수가 자살할 때 머리맡에 유서를 남겼으나 일본 검찰은 '유서 비슷한 것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부인이 무심코 다른 쓰레기와 함께 휴지통에 버렸으며, 그후 청소부가 수거해 갔기 때문에 확인할 길이 없다' 는 옹색한 발표로 얼버무렸다.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 법정에서 변호인단이 이 문제에 대해 말을 꺼내려 하면 발언권을 주지 않고 덮어두기에 급급했다.

추정컨대 이 사건이 만일 공표돼 세상에 알려지고 공권력의 추태가 드러날 경우 형무소나 법무성 당국은 물론 내각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일은 일본 정부와 법무성 당국, 시즈오카 형무소가 똘똘 뭉친 결과 별 문제 없이 넘어가버렸다.

그후 아리타 주임검찰관은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들었는데 그때의 공로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31년7개월간의 복역을 끝내고 새 삶을 찾은 이 순간,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설령 거대한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구리타 간수의 인간적인 배려에 의해 흉기나 화약 등이 반입됐었다고 믿고 싶다.

사건의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고 먼저 가버린 친구의 명복을 빈다. 조직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 따라서 일본의 형무소나 법무성 당국도 스스로의 잘못에 의해 조직이 위태로워지는 것만은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일본의 최장기수로서, 31년7개월 만에 가석방된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상대가 미국인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의문을 품는다.

아무리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하더라도 보통의 경우 20년 이내에 석방되는 것을 보면 내가 불이익을 받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살인행위에 대한 죄값을 치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제라도 고국으로 돌려보내준 일본 정부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를 그토록 내보내주지 않던 형무소측도 자신들의 잘못을 덮어두기 위해 "빨리 가석방할 테니 제발 입을 다물어라" 고 회유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약 10년 전 구마모토(熊本)형무소에서 일어난 소각로 폭발사건이다. 당시 소각로에서 일을 마치고 몸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내 왼쪽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귀가 떨어져나간 것이다. 목재를 자동소각하는 이 장치에 누군가가 넣어서는 안되는 스프레이 깡통을 넣어 그것이 폭발한 것이었다.

단순한 사고였지만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가석방' 운운한 것은 형무소의 은폐 체질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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