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가까워지는 아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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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은 아시아에 속한다. 그러나 해방 후 50여년간 아시아는 한국에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이웃의 일본과 중국은 식민지 경험과 6.25전쟁 때문에 적대감의 표적이 됐다. 대만을 비롯한 '자유우방' 들과는 미국의 지도력을 사이에 두고 맺어진 관계였으며, 경제발전에 따라 수출 시장의 가차없는 경쟁상대가 됐다.

대규모 파병을 통해 이례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은 베트남에도 한국은 그리 기분 좋은 이웃이 되지 못했다. 한국과 아시아의 관계를 규정한 것은 군사논리였다.

70년대부터 이 위에 겹쳐지기 시작한 경제논리는 90년대 냉전 해소로 군사논리가 흐려짐에 따라 주도권을 물려받게 됐다.

세계화에 따른 경제관계의 확대가 분쟁의 소지를 줄임으로써 세계평화에 공헌할 것이란 전망이 있다.

이론(異論)도 없지 않은 전망이지만, 적어도 경제논리가 군사논리보다 평화적 관계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게 됐다.

그러나 경제논리 역시 상대를 객체화하는 배타적 논리다. 이웃의 정(情)을 배제하고 분석적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경제논리는 서양인이 만든 근대성의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대(對)아시아 관계는 메이지(明治)시대 일본이 좇던 탈아입구(脫亞入歐) 꿈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유럽인들은 서로 미워하면서도 끌리는 끈끈한 정으로 공동체를 이뤄가는 데 비해 우리는 정다운 이웃 없이 삭막한 세상을 살아 왔다.

시달리는 대만에 구호대를 보낸 데 이어 동(東)티모르 다국적군 참여는 '아시아 속의 한국' 의 새 위치를 만들어줄 것 같다.

소말리아 평화유지군 참여나 터키 지진 구호대 파견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생각해 구색 맞추는 수준에 그쳤을 뿐 적극적 공헌엔 이르지 못했다.

이에 비해 대만과 동티모르에 대한 우리의 도움은 적극적이고도 실질적인 것이 될 것 같다.

대만은 깊은 유대관계를 가진 나라인 데다 이번 재해 덕분에 우리 산업의 여러 부문이 호황을 바라보는 형편이니 이웃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곡진(曲盡)하게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동티모르 다국적군에도 아시아국가들의 참여를 인도네시아 정부가 특히 지목해 희망하는 사정이니 우리의 참여는 무력개입이 아니라 이웃된 도리로서 환영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해방될 무렵 아시아에는 독립국이 몇 되지 않았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역사의 곡절들을 뚫고 우리와 비슷하게 자라온 동아시아.동남아시아의 나라들이 이제 이웃끼리 새로운 관심을 나누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 에서 탈냉전시대의 세계질서가 전통적 문명권을 중심으로 형성될 것을 전망했다. 지금의 변화가 문명권의 구심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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