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지방채발행- 이렇게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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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마구잡이로 지방채를 발행, 청사.문화시설 신축 등에 나서 물의를 빚고 있다.

이를 두고 공공시설물 설치부담을 세대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다는 지자체 주장과, 지방정부는 편익비용의 심사분석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함께 나오고 있다.

◇ 바람직하다 - 이승우 전북도 기획관리실장

본질상 빚인 지방채를 발행하는 데는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따른다.

외국에서는 과도한 지방채 발행으로 재정이 악화돼 파산한 자치단체가 있는가 하면 채무상환 하느라 지방세 대부분을 탕진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자치단체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우선 지자체가 지방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행정자치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승인조건은 지방채 원리금 상환의 연체가 없어야 하고 채무비 비율이 20% 이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전북도의 경우 6월 30일 현재 총채무액은 3천5백26억원이나 채무비 비율은 6.8%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체 재원으로 상환해야 할 채무액은 5백75억원에 불과하다.

이와 함께 지방채의 순기능적인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지방채 발행은 세입확보의 수단뿐 아니라 재원을 시점에 따라 재분배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내용연수 (耐用年數)가 10년인 쓰레기 소각로를 총 1백억원으로 건설하는 경우 사업비 전액을 조세수입으로 충당한다면 징수시점에 해당 지역내에 거주하는 주민은 세금을 일시에 부담해야만 한다.

그러나 소각로 건설 후에 이사 오는 주민은 단 한푼의 부담 없이 편익만 제공받는 결과가 초래된다.

따라서 지방채는 세대간의 동등한 부담과 공평한 과세를 가져오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와 함께 지방채는 주역주민이나 기업에 편리성과 비교우위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의 성장발전을 촉진하게 되고 결국 지방세수의 증가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지방채는 만병통치약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비판적 시각으로 볼 것도 아니고, 지방채 발행에 따른 자치단체의 채무상환능력 여부와 대상사업의 적정성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 자제해야한다- 박정수 서울시립대 교수

가정에선 집을 장만하거나 지속적인 재산수입이 이뤄질 투자를 위해 일시적으로 은행 등에서 빚을 질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도 지역경제의 활성화 및 지역발전을 도모할 투자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지방채의 발행과 같은 부채를 통해 조달할 수 있다.

99년 6월 현재 우리나라 2백48개 지방자치단체의 빚은 16조8천억원 수준으로, 4천5백만 국민 한사람당 약 37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빚의 규모도 문제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빚으로 벌이는 사업의 성격과 향후 이러한 사업으로부터의 수익, 즉 빚을 변제할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한 의문이다.

과거 우리 지방정부의 지방채는 대부분이 지하철이나 도로건설과 같은 지역기반구조의 확충 등 건전한 투자적 성격이었으나 최근 들어 이러한 재원들이 과도한 규모의 청사신축이나 수익성과 거리가 먼 투자사업, 심지어는 이자지급에까지 투입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투자적인 사업의 경우도 자기 지역의 책임 아래 편익과 비용을 철저히 따지기보다는 다른 지역이 하니까 우리 지역도 동일한 사업을 벌인다는 모방적인 태도가 문제다.

현재 지방채의 발행은 중앙정부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 지역에 골고루 할당하는 현행 지방채 승인절차는 지방정부로 하여금 책임감을 갖지 못하게 하면서 도덕적 해이현상을 초래해 적정 규모 이상의 빚을 낳게 하고 있다.

지방채의 발행은 지방정부가 주민의 동의 아래 빚을 지는 것으로 지방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엄격한 편익비용의 심사분석이 수반되지 않는 지방채의 발행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다.

지방정부간의 재정건전도 및 신용의 차별성을 평가할 수 있는 시장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과도한 지방채 발행은 효율적인 지방정부, 작은 지방정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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