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밀레니엄작가]16.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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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20세기말은 과거 통속장르로 치부되던 미스터리형식이 본격 문학에 깊숙이 원용된 시대. 스페인출신의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48) 는 악마주의를 비롯, 서양의 전통에서 발굴한 스릴러적 소재를 현대의 범죄사건과 결합시킨 추리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다.

그의 작품은 서지학.미술. 기독교. 검술.체스 등 서양문화권에서 익숙한 지적 소재들을 풍부하게 활용하는 것이 특징. 스페인 바깥 영어권 독자들에게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90년작 '플란더스 패널' 은 이런 작품세계를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마드리드의 젊은 미술품 복원 전문가가 15세기 플란더스 지방 기사들의 체스 장면을 그린 그림 한귀퉁이에서 그림 주인공이 살해됐음을 암시하는 문구를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림의 비밀과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교묘하게 병치하면서 독자들을 흥미진진한 미로 속으로 안내한다.

교묘한 지적 미로위에 생생한 인물을 그려내 독자를 흡입하는 작가의 특징은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주인공, 다시말해 고전 추리소설의 탐정 역할로 설정된 인물들의 면면에서도 단적으로 읽힌다.

93년작 '뒤마클럽' 은 프랑스 문호 뒤마의 육필원고를 손에 넣은 고문서 수집광 '루카스 코르소' 가 주인공이 되어 악마를 불러들이는 주술이 기록된 세 가지 고문서 판본을 추적하는 이야기. 최신작인 '세빌랴 코뮈니옹' 에서는 로마 교황청 소속 사제 '로렌조 쿼트' 가 교황의 개인컴퓨터를 해킹, 세빌랴의 17세기 교회건축물에 대해 수수께끼같은 메시지를 남긴 인물의 사연을 찾아나선다.

이처럼 풍부한 문화적 지식을 범죄 사건 속에 녹여낸 작가는 본래 세계 분쟁지역 취재가 장기인 20여년 경력의 방송기자. 보스니아전쟁 취재 경험을 사실적으로 녹여낸 94년작 '코만치의 땅' 은 영화화되어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고향 스페인에서는 명실상부한 최고 베스트셀러작가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그의 작품은 이외에 '플란더스 패널' 이 영화화되었고, '뒤마클럽' 의 경우 헐리우드에서 영화화작업이 진행중이다.

악마주의적 분위기의 영화 '로즈마리의 아기' 로 유명한 로만 폴란스키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조니 뎁이 주인공 루카스 코르소 역을 맡아 올 연말 개봉예정인 '제9의 문' 이 그것. 국내에서도 이사벨라 여왕시대의 검술선생을 주인공 삼은 88년작 '검술의 명인' 을 비롯, 대표작들이 조만간 차례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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