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런 대법원장을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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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윤관 대법원장의 6년 임기가 24일로 끝나게 돼 차기 대법원장 인선이 임박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후 뉴질랜드와 호주를 국빈방문 중인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내일쯤 현지에서 후임자를 지명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13대 대법원장 인선은 '국민의 정부' 출범후 사법분야를 포함한 국가 전 부분에 대한 개혁 바람이 거세고 새 천년의 시작을 앞두고 이뤄진다는 점에서 함축하는 의미가 크다.

말하자면 사법개혁과 나아가 국가의 미래상에 대한 현정부의 구상과 의지가 이번 대법원장 인선에 반영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대법원장이라는 자리는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대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법이 국가질서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법치와 권위의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불행하게도 그같은 대법원장의 위상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대법원장 임명은 집권자나 소수 권력집단의 욕구가 반영됐고, 이에 따라 법은 권력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내지 못했던 적도 많았다.

그래서 사법부도 한때 '정치권력의 시녀' 라는 불명예스런 말을 들을 정도였다.

이 모두가 독재권력에 일차적 책임이 있었다고 할 것이나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사법부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민주화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이고 사회 각 기능의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대법원장 인선을 앞두고 변협과 참여연대가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 후보를 추천한 것도 그같은 사회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 인선을 하는 데 있어 전체 국민적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불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사법부의 위상정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인선에 책임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인사청문회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차기 대법원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법불신을 절실히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해 법치주의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그 기본전제다.

참여연대가 변호사와 법학자 1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대법원장의 자격기준이 법관의 경력이나 법률적 식견, 지도력보다는 민주적 소신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정치권력의 의지가 약하더라도 법이 바로 서면 민주화는 촉진된다.

법치주의의 실현 정도가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인 민주화의 수단이자 척도라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인물이 새 대법원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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