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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동유럽·중앙亞 '대우 강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지난 4일 오전 11시.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동쪽으로 85㎞ 떨어진 피에스티니시에 위치한 대우자동차 현지법인 주차장은 토요일인 데도 자동차로 가득 차 있었다.

자동차 판매 성수기인 9월을 맞아 자동차 세일즈맨들에 대한 특별교육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 그러나 70여명의 자동차 세일즈맨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대우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안했던 탓이다.

30대의 한 세일즈맨은 취재진에게 "대우 위기가 보도된 후 대우차를 구입한 고객들로부터 '별 문제 없겠느냐' 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며 "고객도 고객이지만 내 일자리가 없어질지 몰라 걱정" 이라고 말했다.

슬로바키아 경제주간지 트랜드의 편집장 요세프 하이코는 "심한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20%에 이르는 상황이라 대우의 투자가 끊길 경우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고 우려했다.

동구권과 중앙아시아 경제에 '대우 비상' 이 걸렸다. 경제규모가 작고 '대우 의존도' 가 큰 지역이기 때문이다.

폴란드.루마니아.체코.우크라이나 등에서 5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대우가 무너진다면 대규모 실업사태는 물론 자동차 등 국가 기간산업의 뿌리가 흔들릴 판이다.

◇ 다급한 현지경제 = 동구권의 대우 전초기지인 폴란드가 가장 다급한 상황이다. 폴란드 승용차 기지인 FSO의 경우 현지시장 점유율이 28%로 수위며 고용효과만 2만명에 달한다.

현지에서는 안도이아 디젤 공장과 연간 1백만대의 TV를 생산하고 있는 대우전자 프루스즈코바 공장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고 보고있다.

현지 폴리티카 신문은 "대우사태가 폴란드 공장으로 불똥이 튈 경우 폴란드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며 "당분간 생산축소가 불가피할 것" 이라고 예측했다.

대우가 자동차.조선.전자분야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해놓은 루마니아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우의 투자액은 외국기업으로는 최대 규모다. 티미소아라 부품공장과 마티즈 모델을 생산하는 크라이오바 공장, 그리고 망가리아 조선소를 합칠 경우 1만명 이상의 종업원이 대우에 목을 매달고 있다.

승용차 공장이 사실상 대우 한 곳 뿐인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생산 및 판매점유율이 90% 이상을 웃도는, 사실상의 독점기업인 대우와 현지 정부가 체결한 조인트 벤처 투자가 차질을 빚을 경우 국가 기간산업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헝가리 무역투자청 길리안 처버 투자국장은 "헝가리에 가장 중요한 투자자인 대우의 위기가 해소돼야만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는 헝가리 경제가 높은 성장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 세계경영팀의 권영철 전무는 "전체 3만개의 부품 중 단 2개만 공급이 끊겨도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재고소진이 예상되는 이번 달말께 대다수 현지 공장에 조업중단 혹은 조업단축 사태가 빚어질 것" 이라고 걱정했다.

◇ 대응방안 = 현지 국가들은 최근 들어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르노 등 다른 외국업체에 차별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부여해 대우와 마찰을 빚은 루마니아의 경우 대우에도 동등한 혜택을 부여할 것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조만간 카리모프 대통령이 직접 방한, 대우 현지 승용차 공장의 정상가동 등에 대한 협력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선 해외채권단의 재산압류 소송 등으로 경영권 향배마저 불투명해 종업원들이 매우 불안해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며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브라티슬라바.프라하 = 김영훈 기자, 표재용.김현기.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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