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 법무장관 인터뷰] '현실 안맞는 법 고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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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수사기관의 금융거래 추적과 감청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6일 오후 김정길 (金正吉) 법무장관을 정부 과천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금융거래 추적은 확인된 혐의 사실에 대한 보강증거 수집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감청도 최소화해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떨쳐버리겠다" 고 밝혔다.

金장관은 정치적 질문에 대해선 대부분 고개를 저었고 "국민의 실생활에 관계되는 질문을 더 많이 해달라" 고 요청했다.

- 얼마전 옷로비 사건과 파업유도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끝났습니다. 법무 행정의 총책임자로서 TV청문회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 (한동안 망설이다)가슴도 아프고 국민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참 부끄러워요. 앞으로 검찰이 노력해서 정말로 국민의 편에 서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아직 재판 중이니까 더 이상 상세한 언급은 피하는 게 도리일 것 같네요. "

- 국민들이 실효성을 의심받는 청문회에 자꾸 집착하는 건 결국 검찰을 못믿기 때문이 아닙니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법이나 제도상으로야 검찰중립이 다 돼있죠. 아시다시피 제도가 아니라 그 운용이 문제일 겁니다. 지금 여기서 뭐라고 한들 소용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검찰이 공평무사하다는 걸 국민들께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라고 일반 국민들과 다르게 대우하지는 않겠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도 법앞에서 평등한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사건이든 뭐든 검찰이 성심성의껏 매사를 처리하면 결국은 신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봐요. "

- 최근 야당은 검찰이 실시한 계좌추적에 대해 강력히 비난한 바 있습니다. 또 도청과 감청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국민들도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비난도 있었고 의구심도 존재하죠. 의욕은 앞서고 추적 대상자나 금융거래 기간이 광범위하다 보니까 그 과정에서 자칫 수사권 남용의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 게 사실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현재 법무부에서 구체적인 방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곧 '계좌추적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특별지시' 를 하달할 생각입니다. 감청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지난해 12월 '통신비밀보호법' 을 개정해 국회에 제출했고 올 정기국회에서 이 안이 본격적으로 심의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꾸 문제가 됩디다.

중앙일보에서도 문제를 지적한 걸로 아는데 수사기관뿐 아니라 개인간의 도청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달 27일엔 '불법감청 특별단속지시' 를 내려서 이를 강력히 단속하라고 지시했어요.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는 그 가능성을 자꾸 줄여나가는 게 중요하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내년 법무부의 예산안과 올해를 비교하면 검찰과 법무행정 분야는 예산증가율이 미미한데 비해 교도행정과 소년보호활동 등에 예산이 많이 배정되고 있습니다.

" (반색을 하며)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검사를 할 때나 (그는 95년 광주고검장을 끝으로 검사생활을 마감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소년수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어요. 비행소년이 하나 있어 보십시오. 가족들까지 다 불행해집니다. 또 소년수들 본인도 자포자기와 자기 상실감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소년수들에 대한 컴퓨터교육과 영어교육을 올 9월부터 대대적으로 시작하게 된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뭡니까. 어학과 컴퓨터 아닙니까.

소년수들의 재범을 막으려면 그들에게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소년수들 가운데서 요즘 말하는 신지식인이 나중에라도 반드시 탄생해주길 기원합니다.

이걸 법무부의 중요시책 중 하나로 삼을 겁니다. " (金장관은 소년수들에 대한 구체적 교육프로그램과 교육부.노동부 등 관련부처와의 협조 현황 등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

- '국민의 한 (恨) 을 풀어줘야 한다' 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무슨 뜻입니까.

"예를 들어 봅시다. 검찰이 1년에 처리하는 고소.고발사건이 약 46만건입니다. 대부분이 변호사도 제대로 못쓰는 서민들의 소액 민사분쟁 사안입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20% 정도만 기소가 되고 나머지는 다 불기소 처분됩니다. 검찰이 손이 모자라니까 이런 분들 얘기도 제대로 못들어줍니다. 그러면 한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법률구조공단을 적극 활용하려고 합니다. 우선 내년에 임용되는 공익법무관 중에서 45명을 법률구조공단에 배치하고 일선 검찰청 민원전담 검사실에 출장근무를 시킬 겁니다. 고소.고발하는 서민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법률구조공단에서 도와줄 게 없는지를 검토시키자는 겁니다.

억울한 사정을 호소라도 해야 할 게 아닙니까. "

- 법무부에서 각종 법령을 주도적으로 정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법령이 현실에 안맞으니까 법을 지키면 규제를 당하는 모순이 생깁니다.

그걸 없애자는 겁니다. 대법원과 상의를 하고 있는데 상법과 기업정리관계법률, 중재법은 개정안이 이미 정기국회에 제출됐습니다. 민법과 민사소송법도 개정되는데 국민의 편익증진, 인권보장 강화 및 국가경쟁력 제고 등이 법령 개정의 큰 기준입니다. "

- 공직자비리 수사처는 말만 나오고 흐지부지된 것 같습니다.

"좀 더 세밀히 준비하기 위해 기간이 길어지는 건데 결국 설치될 겁니다. "

- 전임 법무장관들 중에는 개성이 강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金장관은 비교적 조용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머니 같은 실무형 법무행정을 펼치려고 합니다. 국민들, 그중에서도 서민들과 재소자.소년범들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는 행정입니다. 죄와 벌이 균형이 맞고 그래서 국민들이 검찰이 공평하다고 인정할 때 정치적 중립성도 결국 확보될 거라고 믿습니다. "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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