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가 열전] 3. 버나드 허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올해 탄생 1백주년을 맞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그의 걸작 서스펜스 스릴러 '사이코' (60년)에 버나드 허먼 (1911~75) 의 음악이 흐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현악기 일색의 모노톤이 빚어내는 음울하고도 통렬한 금속성 사운드가 없었다면 그 유명한 샤워실 살인 장면도 충격이 반감되지 않았을까. 비브라토의 윤기를 걷어내고 속살을 드러낸 차갑고 예리한 사운드…. 이 장면에서 음악을 쓰지 말자고 했던 히치콕은 영화가 완성된 후 다시 허먼에게 음악을 부탁했다.

허먼 역시 히치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해하고 과격한 작곡기법으로 '할리우드의 기피인물' 이 됐을지도 모른다.

'파리의 재난' (55년) 으로 처음 만난 이들은 '나는 비밀을 안다' (56년) '현기증' (58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59년) 를 거쳐 '찢어진 커튼' (66년) 촬영 도중 의견 충돌로 결별할 때까지 호흡을 맞춘 명콤비.

뉴욕 태생으로 뉴욕대와 줄리아드 음대에서 작곡을 배운 허먼은 22세때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당시 객석에 앉아있던 CBS방송국 음악부장 로니 그린에 의해 스카웃됐다.

라디오 드라마.다큐 음악을 맡고 있던 허먼은 오손 웰스가 감독.주연으로 데뷔한 '시민 케인' (41년) 의 음악을 맡아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그는 화려한 풀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장대한 선율이 아니라 소규모의 실험적인 악기편성으로 짧지만 인상적인 테마를 만들어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개봉 당시 존 애디슨의 음악으로 교체된 '찢어진 커튼' 에서 허만이 애초에 구상했던 악기편성은 12개의 플루트, 16개의 호른, 2개의 튜바, 팀파니 2세트, 8개의 첼로, 8개의 콘트라베이스. 이 음악은 LA필하모닉 (지휘 에사 페카 살로넨) 의 음반 '버나드 허만의 영화음악' (소니 클래시컬)에 수록돼 있다.

허먼은 유작이 돼 버린 마틴 스콜세지 감독.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택시 드라이버' (75년)에서는 알토 색소폰 독주가 애처롭게 흐느끼는 재즈 편성을 사용했다.

평생 지휘자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나는 비밀을 안다' 에서는 지휘자역으로 직접 출연, 로열알버트홀에서 런던심포니를 지휘했으며 70년 런던심포니와 함께 홀스트의 '혹성' (데카) 을 녹음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