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신문 1951~55] 유전자 DNA 암호 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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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953년 4월 25일 케임브리지]케임브리지대 캐빈디시 연구소에서 일하던 미국 출신의 생화학자 제임스 왓슨 (25) 과 프랜시스 크릭 (37) , 모리스 윌킨슨 (37) 이라는 두명의 영국인 생화학자들이 이날 낮 큰 일을 해냈다.

몇년간의 연구 끝에 생물 유전의 암호를 푸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될 유전자구조가 이중나선형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유전자의 본체가 디옥시리보핵산 (DNA) 으로 불리는 물질이라는 사실은 지난 28년 밝혀졌으며 43년에는 DNA를 분리추출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전자의 구조는 계속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는데 이들 과학자들이 그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유전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들의 업적은 비단 인간생명의 신비를 하나 더 푼데 그치지 않는다.

이 발견을 바탕으로 앞으로 인류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의학.농업.자원.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산업적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이들은 DNA 분자구조가 탄소 다섯개가 오각 고리모양으로 이뤄진 당 (糖) 과 인산, 그리고 질소를 지닌 염기성 화합물의 3가지 결합체로 이뤄진 단위체가 여러개 이어진 것임을 밝혀냈다.

또 유전자는 길게 늘어진 이 DNA분자가 두 줄로 나란히 서서 서로 염기를 통해 이어지면서 두줄로 꼬인, 이중나선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채인택 기자

*이들 3명은 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함께 수상했다.

[그후…]

근대과학의 눈부신 발전무대에서 뒷전을 맴돌던 생명과학이 DNA구조 해명을 계기로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현대과학의 총아로 등장한다.

생명현상은 그 무한한 복잡성 때문에 단순성을 추구하는 근대과학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고, 물리학과 화학의 첨단연구성과를 2차적으로 수용하는 '2등과학' 의 위치에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 제창 (1838) 이래 근대생물학의 핵심요소로 부각된 유전자조차 구체적으로 측정하지 못하는 단계의 생물학은 '정밀과학' 의 문턱도 제대로 넘지 못하고 있던 셈이다.

DNA구조 해명은 '이론' 에 머물러 있던 진화론이 '법칙' 의 단계로 나아갈 열쇠를 마련해 주는 등 생물학의 지형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DNA차원의 연구분야인 분자생물학이 60년대 이후 생물학의 연구분야를 모두 뒤덮어버린 것이다.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의학분야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유전공학이란 새 학문분야를 만들어냈다.

97년 아기양 돌리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생명복제의 성과는 이제 인간에게 접근해 과학윤리 문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메리 셸리가 제기한 프랑켄슈타인의 악몽도 기술적으로는 이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식량과 의료,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킬 두 방면에서 유전공학은 화려한 약속을 인류에게 내놓고 있다.

근대과학이 지금까지 베푼 어떤 혜택보다도 큰 혜택이 이 약속에 들어 있다.

인류가 파우스트박사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은 이 약속을 받아들일 경우 어떤 정체성의 변화를 겪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기협 문화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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