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개혁 이젠 실천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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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 낮 청와대에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주재로 열린 정.재계간담회는 정부의 재벌개혁정책을 둘러싸고 빚어진 혼선과 혼란을 잠재우고 앞으로의 추진방향과 후속조치 내용에 관해 정부.여권 및 재계간에 합의점을 도출해 냈다는 점에서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재벌의 '해체' 냐 개혁이냐를 놓고 한바탕 긴장이 일었고, 간담회를 앞두고 현대가 주력 계열사의 분리시기를 앞당기는가 하면 삼성차 채권단과 버티기작전으로 일관하던 삼성이 채권단 입장을 전격 수용하는 등 분위기는 한층 급박하게 돌아갔었다.

간담회에서 정부측이 제시한 이른바 '플러스3' 원칙 등 재벌개혁안을 재계가 수용하고, 이 합의문에 따른 7개 실천사항의 자발적인 이행을 결의할 예정이라고 하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하기야 내용적으로는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제안에 마지못해 동의서를 써 준 형국이고, 대통령 앞에서 재벌총수들이 개혁을 맹세하는 듯한 모양새 또한 좋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정부의 후속조치에 화답 (和答) 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은 일대 용단으로 우리는 평가한다.

정부 또한 재계를 감싸안으며 재계쪽 의견을 사전수렴하고 자극적이거나 급진적 요소를 자제한 흔적은 역력하다.

재벌개혁은 제로섬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동반승리로 이끄는 '윈 - 윈' 게임이며 이런 점에서 이번 합의는 존중되고 지속되어야 한다.

비록 재계가 원칙은 수용했지만 세부 각론들에 대한 이견은 지금도 적지 않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은 계열사 뒷받치기 폐단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지만 제도 자체를 폐지한 지가 얼마 안되고 그동안 부채비율감축을 위한 유상증자의 활성화 등 구조조정에 기여한 측면도 적지 않았다.

기업들이 출자한도를 넘는 지분을 한꺼번에 내다 팔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다.

부활시기를 2001년 4월로 잡은 만큼 제한한도설정에도 신축성이 요구된다.

또 상장회사 사외이사 비중의 50% 확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고 사실상 경영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재계가 크게 반발해 이 역시 절충의 소지는 없지 않아 보인다.

제2금융권 경영지배구조개선과 관련, 소유지분제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뒤늦게나마 잘한 일이며 변칙상속 및 증여 방지대책은 이미 세제개혁에서 언급한대로다.

재벌개혁은 이미 궤도에 올랐고 정해진 방향에 따라 착실한 실천만 남았다.

개혁촉진쪽으로 제도를 꾸준히 개선하고 법과 제도의 틀에 따라 감시.감독을 강화함으로써 재벌의 자율개혁을 유도함이 가장 효율적이고 순리다.

재벌들은 개혁의 가속화와 함께 '재벌적 경영관행' 을 속히 떨쳐내고, 정부 또한 재벌개혁에 관해 더 이상 혼선을 빚는 '딴소리' 가 정부 및 여권내에서 나오지 않도록 신뢰와 일관성을 견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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