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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채널, 역량 갖춘 복수사업자 바람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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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전문 채널 허가를 받기 위한 신문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알려진 것만 해도 8개나 되는 컨소시엄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방송법 개정의 근본 취지가 신문의 방송 겸영을 허용하려는 것이고 보면 이 경쟁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종편이든 보도 채널이든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문들은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광고시장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광고주들은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보다는 판촉효과 위주로 마케팅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5년간 총광고비 성장률은 11.6%(연평균 2.2%)에 그쳤다.

둘째로 지상파와 경쟁하려면 대규모의 초기 자본과 콘텐트 차별화를 위한 과감한 제작투자가 필요하다. MBC와 SBS가 연간 수천억원을 프로그램 제작비로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편이 일정한 시청률을 확보하려면 버금가는 수준의 제작비가 필요하다. 일부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수년간 수백억원에서 천억원대의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있다. 보도채널도 사정이 간단치 않다.

셋째로 정부의 지원도 쉽지 않다. 채널 배정, 세제 지원 등의 방안은 지상파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 등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중간광고 허용, 광고총량제, 전국단일방송 등의 비대칭 규제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물론 거대 지상파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방송시장에서 신생 종편 또는 보도채널이 자리를 잡으려면 어느 정도 정책적 지원은 필요하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계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 우선 종편 채널의 경우 방송광고 시장 규모를 감안해 1개만 허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기준점을 충족시키는 사업자는 모두 허용해 줘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보도채널을 두고도 이런 저런 의견들이 나온다.

이렇게 엇갈리는 상황에서는 기본으로 돌아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법의 근본 취지는 무엇인가.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시장 개편의 정책목표는 매체·채널 간 서비스 경쟁을 촉진해 방송시장 성장과 일자리 확대에 기여하며, 종편 채널 등 신규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통해 방송 콘텐트 시장 경쟁을 활성화시키고 여론의 다양성을 제고하는 데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종편채널을 1개사만 선정해서는, 다시 말해 많아야 5000억원 정도의 투자를 이끌어내서는 방송시장을 키우지도 못하고, 경쟁을 활성화시키지도 못한다. 늘어나는 일자리도 한계가 있다. 더구나 이 같은 종편 숫자 제한은 또 다른 규제다. 진입장벽을 통해 보호받는 종편이 무슨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국회에서 미디어법안을 강행 처리해 위헌 시비까지 일게 한 것이 허망할 뿐이다.

다수의 컨소시엄 중에서 종편 1개사만 선정하면 후유증도 클 터이다. 심사 결과 1등을 뽑으면 심사 기준 자체가 특정 컨소시엄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는 비난에, 2등이나 3등을 선정하면 정치적 고려에 따른 특혜라는 의혹에 휘말리게 된다. 특혜 시비와 탈락자들의 반발이 거셀 경우 순조로운 방송 발전은 시작부터 물 건너갈 가능성이 있다.

미디어법의 근본 취지를 살리고 미디어산업이 성장하도록 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시장경제와 개방화 원칙에 충실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물론 수준 이하의 방송이 난립하는 것은 ‘방송 공해’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만큼 엄정하게 평가하고, 일정 수준을 넘어선 후보 중에서 복수의 종편 채널을 선정하는 게 최선이다.

종편 또는 보도 채널을 추진 중인 신문들과 허가권한을 가진 방통위는 이런 난제들을 직시하고 완벽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니면 취약매체들만 생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이 ‘희망의 역설’을 모두가 새겨야 할 때다.

김민기 숭실대 교수·언론홍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