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유문제도 시장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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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유가가 20달러를 넘어서면서 회복기에 접어든 우리 경제에 짙은 암운이 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무역수지 흑자를 착실히 쌓아가며 이제 막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탈출의 희망을 되살린 우리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빨리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느냐는 질책이 쏟아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의 개입이 지금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결코 우리 경제에 득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때가 됐다.

*** 정부개입은 自生力 훼손

유가가 오르더라도 정부가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게 되면 산업계 스스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든지, 정유사가 해외 유전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시장 참여자 스스로 시장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즉 유가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비용을 시장이 알아서 극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정부의 개입에 안주해 온 나머지 시장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정부의 재정투입은 단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자생력을 상실하게 해 결국 점점 더 정부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을 부르게 된다.

이제는 당장의 고통을 참고 시장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에너지 부문의 개혁은 바로 이런 바탕에서 이뤄져야 한다.

개혁을 하려면 정부나 재벌을 개혁해야지 웬 에너지산업을 개혁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직 개발연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은 사람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4대 개혁이 중증상태의 성인병을 고치는 작업이라면 에너지산업의 개혁은 산업의 혈맥에 쌓여 있는 노폐물을 없애 피가 제대로 흐르게 하자는 것이다.

국내 부존 에너지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다.

현재의 정부 혹은 공기업 주도형 에너지산업 구조는 압축성장시대의 산물이다.

즉 대형수출장치산업과 국가기간산업의 육성을 위해 정부가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에너지안보는 곧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것으로 이해됐다.

오랫동안 정부가 직접 에너지시장에 개입해 온 결과 산업계뿐 아니라 일반국민도 정부가 에너지를 싸게 공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다시 말해 싼 에너지의 공급은 안보나 민생안 정차원의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에너지가격의 안정은 거시정책 차원의 물가안정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 에너지산업도 경쟁 필요

IMF터널을 지나면서 아직도 우리는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고 있다.

경쟁을 이끌어갈 새로운 산업은 반드시 벤처산업이나 첨단산업이 아닐진 몰라도 에너지를 이제까지처럼 마음대로 쓰는 산업이 돼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경제발전은 환경보존과 조화를 이루는 환경친화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에너지를 절약하자고 정부가 지시하거나 홍보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개혁인가.

그렇지는 않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시장의 역할을 이제보다 늘리는 것이고 그 요체는 에너지의 가격기능 회복을 통한 수급조절과 경쟁을 통한 효율성의 증진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당장 시급한 것은 에너지산업의 대내개방과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정부의 보호라는 온실에서 자란 에너지 산업이 자생력을 갖추려면 우선 내부적으로 경쟁을 통해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외국업체와 경쟁을 해야 할 우리 에너지산업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의의도 함께 갖고 있다.

또한 에너지산업의 개혁은 전력.가스.석유.석탄 등에 대한 종합적인 안목을 갖고 일관된 원칙하에 이뤄져야 한다.

가장 먼저 개혁의 대상이 된 전력산업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것은 이처럼 에너지산업을 전반적으로 바라보는 구도하에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느 공공부문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산업 개혁의 마지막 걸림돌은 바로 정부의 그늘 아래서 그동안 지대 (地代) 를 누려 왔던 공고한 기득권층이다.

이들에 대한 개혁 없이는 에너지부문의 환골탈태는 요원한 일이다.

장현준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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