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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재벌개혁의 득과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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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 정책의 핵심은 선단식 (船團式) 기업연합을 해산해 계열기업들이 각자 능력에 따라 살아남도록 하겠다는 것과, 총수들의 무제한적 경영권 행사에 제동을 걸어 과거의 경영실패를 되풀이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재벌해체로 보아야 하는지는 주관적 해석의 문제지만, 이것은 앞으로 한국경제에 엄청난 질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재벌개혁이 어떠한 변화를 초래하고 그 결과 한국경제는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

먼저 선단식 경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자 몇몇 계열사의 부실이 그룹전체의 부실로 이어져 선단전체가 침몰하는 것을 보면서 누구나 선단식 경영이 문제가 많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특히 비효율적인 기업이 재벌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살아남게 되는 것은 선단식 경영의 중요한 폐단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당초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선단식 그룹형태를 취하게 된것은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즉, 집단안보 체제를 형성해서 공생공사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외환위기와 같이 유례없는 충격에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웬만한 경기변동의 충격과 경영상 위험을 분산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던 것이다.

자동차수출의 부진이 반도체의 호황으로 상쇄되고, 반도체의 불황이 조선의 호황으로 상쇄되는 것이 바로 그런 효과다.

특히 이 전략은 해외시장 개척과 다국적 거대기업들과의 경쟁에 매우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아무리 크다한들 국제무대의 거대기업들과 비교해 보면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국제수준에 미달하는 중소기업의 연합체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재벌기업들의 집단안보 전략은 국내적으로는 경제력 집중 문제를 야기했지만,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구미의 거대 다국적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선단식 경영의 해체를 추진해 계열기업들이 각자의 능력으로 살아 남도록 하는 것은 일단 이들 기업에 집단안보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남도록 하는 압력을 가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체질 강화와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선단식 재벌구조의 해체를 추진하는 기본 논리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렇게 조각난 연합군이 과연 엄청난 화력을 가진 외국 다국적기업들에 대항해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의 문제가 있다.

물론 이미 어느 정도 국제수준에 도달한 일부 기업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더욱 강화된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나, 동시에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주력기업들이 국내외 경쟁에서 각개격파되거나 흡수합병될 것이다.

지금 대우자동차가 GM에 넘어가는 것이나, 주요 재벌기업들이 외국자본과 합작을 추진하는 것이 그 추세의 일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 의사결정 구조의 개혁도 그것이 기업 종사자와 주주들에게 반드시 이로운 것인지 검증이 필요하다.

배임이나 횡령과 같은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불법행위는 기존의 법령으로 철저하게 적발, 처벌해서 예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도박이나 전략게임의 속성을 갖고 있는 기업경영을 정부 민원행정과 같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의사결정도 좋지만, 견제와 균형만이 강조되면 창의와 위험부담 의지가 위축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궁극적으로 한국에는 고수익 고위험의 첨단 프로젝트나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사라지고, 중.하위 기술 분야에서 외국 대기업과의 합작이나 위탁생산을 담당하는 보수적인 중소기업들이 한국경제를 구성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반드시 열등한 결과인지는 가치판단의 문제지만 역동적인 성장형 경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기업구조를 버리고 새로운 기업구조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개방경제 시대에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손실을 극소화하고 이득을 극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종석 홍익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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