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살아있다] 11. '문화벨트' 대학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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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실낱보다 더 가는 1만6천3백48가닥의 엿 줄기를 보셨나요' . 서울 혜화동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용수염' 을 파는 노점상 조중호 (26) 씨가 반갑게 맞이한다.

"자장면은 밀가루, 용수염은 꿀가루로 만들죠. 자장면은 서민이, 용수염은 황제가 먹죠. " 꿀가루란 맥아당.땅콩.전분.마가린.식용유를 섞어 만든 것.

지나가던 연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조씨를 둘러싼다. 회초리 같았던 두가닥이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늘어나며 가늘어질 때마다 탄성이 터져나온다.

이같이 만든 용수염 10개 가닥에 5천원. 연인들은 감기.천식에 효과가 있다는 말보다는 장난삼아, 추억삼아 사먹는다.

한적한 벤치에 앉아 손잡고 있는 연인들은 이곳에선 너무나 평범하다. 가끔 여자들끼리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유럽의 자유분방한 거리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대학로를 한번 훑어보면 '젊음의 자유특구' 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거리마다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는 특수시장으로 뿌리 내리고 있다.

서울대 문리대 자리였던 이 일대는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30여 개의 순수 연극공연장이 밀집 된 국내 유일의 '문화 특구' 로 부상했다.

그러나 대학로는 이런 문화적인 환경과는 달리 한때 밤이면 오토바이 폭주족이 활개를 치는 우범지대로 이미지가 훼손되기도 했다.

10대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자 이곳을 아지트로 삼아 그들의 욕구를 무분별하게 분출하는 곳으로 변했던 것. 마침내 이곳 상인들은 물론 검찰까지 발벗고 나서 이곳을 '푸른 쉼터' 로 정하고, 청소년들의 건전한 도심 속 문화 공간으로 육성했다.

최근 이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 폭주족이 사라지고 대신 곳곳에서 어둑해질 때까지 농구 경기와 배드민턴을 치는 젊은이들로 건강한 모습을 되찾은 것. 나무에서 우는 매미를 잡고, 비둘기를 따라 다니며 노는 10대들이 눈에 띈다. 모두 대학로의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대학로를 찾는 하루 평균 20만명의 젊은이들은 이런 것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미니 토끼를 살 수 있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손으로 만든 이색적인 액세서리도 구입할 수 있다.

또 공원 입구에 우뚝서 있는 은행나무 그늘에는 연필로 초상화를 그리는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얼마 예요?" 작업 중인 예술가는 대꾸도 않는다. 앞에 앉아 있는 고객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예술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작업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2만원이라고 말한다. 예술가의 귀에 달려있는 철사 귀걸이나 혐오스럽게 긴 엄지 손톱도 볼거리다.

대학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쟁이' 도 이곳의 분위기를 돋운다. 1만원만 내면 궁합.사주를 요구하는 대로 봐준다. 공원 한복판에서는 길거리 공연을 보러 1백여명의 젊은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 곳서 매일 기타 치는 낯익은 얼굴도 대학로의 한 부분이다.

특별취재팀=김시래.유지상.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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