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장남 묘 찾은 원자바오 “이제 조국은 강대국이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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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방문 중인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5일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군 열사 묘를 방문해 마오안잉(毛岸英)의 묘소에 헌화하고 있다. [회창군 AP=연합뉴스]

평양 방문 이틀째인 5일 아침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향한 곳은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 묘였다. 평양에서 동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평안남도 회창군에 자리한 열사 묘에는 한국전쟁 때 숨진 134명의 중국군 유해가 묻혀 있다. 묘까지 오르려면 240개의 계단을 거쳐야 한다. 당시 참전했던 240만 중국군을 상징하는 숫자다. 원 총리는 소나무 숲 사이에 조성된 묘역 맨 앞 화강암으로 만든 흉상 앞에 꽃다발을 바쳤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의 묘였다.

원 총리는 “마오안잉 동지, 벌써 반 세기가 지났습니다. 이제 조국은 강대국이 됐으며 인민은 행복합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라고 말했다. 원 총리의 마오안잉 묘소 참배에는 방북단 전원은 물론이고, 류사오밍 평양주재 중국대사와 직원·유학생 등 3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런 행보는 북한 내에서조차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빡빡한 방북 일정 중에 평양에서 두 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를 대규모 참배단을 이끌고 직접 찾았다는 점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에는 평양 시내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중·조(中·朝) 우의탑이나 형제산 구역의 중국인민지원군열사 묘를 찾는 게 관례였다”고 말했다. 마오안잉은 참전 중이던 1950년 11월 중국군 사령부(현재 묘소가 있는 곳에 주둔)에서 근무하다 미군의 폭격으로 숨졌다. 당시 마오쩌둥은 “다른 중국군의 시신도 가져오지 못하는데 내가 주석이라고 해서 아들을 특수하게 대할 수 없다”며 북한 내 안장을 지시했다. 절대 특별한 장례를 치르지 말도록 엄명도 내렸다. 김일성 당시 수상도 “조선인민의 해방사업을 위해 싸우다 죽었으니 조선의 아들”이라며 북한에 묘지를 마련할 것을 마오쩌둥에게 요청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28세 나이에 이국 땅에서 숨진 마오안잉의 묘는 북·중 혈맹관계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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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총리의 행보를 두고 마오안잉의 희생으로 대표되는 양측 간 친선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대북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중국이 강대국이 됐다”고 선언한 것을 두고 북한에 대해 우회적인 압박을 가한 것이란 풀이도 제기된다. 북핵 문제나 6자회담 등에서 중국의 입장을 반영해 처신하라는 경고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던졌다는 얘기다.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공언하고 있지만 대북 제재와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염두에 둔 발언인 셈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6일 베이징행 비행기에 오르기에 앞서 순안비행장 인근에 있는 ‘조·중 친선 택암협동농장’을 찾았다. 58년 2월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가 김일성과 함께 방문해 이런 명칭이 붙은 곳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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