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 이재용 전무도 배우고 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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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의 경기도 안산공장에서는 직원 개개인이 나름의 작업 속도에 맞춰 움직인다. 컨베이어 벨트를 뜯어낸 결과다. 이들은 “작업 분위기가 훨씬 유연해졌다”고 말한다. [캐논코리아 제공]

지상 최고의 효율을 뽐내는 생산라인으로 흔히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꼽는다. ‘가이젠(改善)’을 부르짖으며 마른 수건에서도 수분을 짜내는 ‘도요타 웨이’는 이미 전 세계 제조업체의 본보기가 돼 왔다. 그런 도요타의 조 후지오(張孵뵨夫) 회장이 지난해 6월 경남 창원의 LG전자 에어컨 공장을 찾아 동반한 구본무 LG 회장에게 “생산성이 대단하다”는 감탄사를 연발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 LG의 구 회장이 몸소 탐방한 생산현장이 국내에 있다.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의 경기도 안산 공장이다. 일본 캐논과 롯데가 50대50 합작한 회사로, 롯데캐논이던 사명을 2006년 바꿨다. 주로 소형 복합기와 프린터를 생산한다.

구 회장은 4월에 부회장·사장 등 28명의 계열사 최고경영진과 함께 이 공장을 둘러본 뒤 “인상적이다. 사장단뿐만 아니라 사업부장·공장장들도 와서 배웠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캐논 측은 전했다. 2004∼2005년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임원들과 함께 안산 공장을 세 차례 방문했다. 이 전무는 당시 “굳이 돈 들여 일본 연수를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6월에는 롯데 사장단 회의가 이곳에서 처음 열렸다.

무엇이 국내 유수 기업 경영자들의 발길을 끌까. 이 회사 김천주 사장은 “컨베이어 벨트를 걷어내고 셀 생산 방식을 도입한 뒤 10년 동안 이를 한국형으로 안착시킨 현장 노하우에 관심이 집중됐다”고 말했다.

◆컨베이어 벨트의 한계=롯데캐논은 1999년 세포·단위 등의 뜻을 가진 셀(Cell)이란 생산 방식을 도입했다. 그전 15년 동안 써 오던 108m 길이의 컨베이어 벨트를 뜯어내고 1000∼2000개의 부품을 한 명이 조립 생산하는 셀 생산체제를 갖춘 것. 이미 공장 안은 여유 공간이 없어 새로운 컨베이어를 깔기 힘들었다. 물건은 쏟아지는데 수요 변동은 심해 재고 관리가 어려웠다. 컨베이어 곁에서 종일 단순작업을 반복하는 생산직 근로자들도 지쳐 갔다. 이미 수년 전부터 셀 방식을 써 온 캐논 본사에서 기술을 이전받았다. 이제 셀을 관장하는 ‘셀장’이 26명에 달한다. 그중 한 명인 변미경 셀장은 “제품 생산 전반의 공정을 두루 익히며 복합기를 혼자 만들어 내게 돼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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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셀 방식의 정착=셀 방식을 처음 도입한 99년 이 공장의 생산량은 연 5만 대였으나 지난해 100만 대로 늘었다. 20배 급성장의 비결은 ‘한국형 셀 방식’이었다.

김영순(생산본부장) 상무는 “초창기에 무늬만 셀 방식인 경우가 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핑계 없는 공장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회고했다. 생산라인과 구매·검사·재고부서가 떨어져 있다 보니 생산효율이 좋지 않게 나오면 다른 부서 탓으로 돌리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2002년 한 기종을 책임지는 ‘기종장 제도’를 만들면서 공장 직원 600여 명에 대한 대규모 조직 개편을 했다. 200여 명의 연구인력 외에 50∼100명의 직원을 6명의 기종장 밑에 배치했다. 자재 등 부품 발주는 물론 원가와 재고관리·제품검사까지 기종장이 독립적으로 했다.

김 상무는 “부품 구매부터 출하까지 모든 걸 책임지는 포장마차 주인을 벤치마킹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다양한 경쟁체제를 도입하자 재고는 거의 ‘제로’로 줄고 1인당 생산성은 단순 셀 방식보다 25% 정도 높아졌다.

복합기 등을 일정 시간 내에 조립하는 직원에게는 ‘마에스터’라는 이름의 역할을 부여하고 수당까지 지급했다. 연말 ‘왕중왕’ 경연에도 출전할 수 있다.

또 생산관리·자재·검사 등을 담당하는 기능공은 ‘마이다스’라고 명명했다. 실적이 가장 좋은 기종장을 한 달마다 선정해 소속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김 상무는 “컨베이어 벨트만 없는 게 아니라 노사 분규와 제품창고가 없어 ‘3무(無) 공장’으로 불린다. 중국과도 가격경쟁력을 겨뤄 볼 만하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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