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좌담 - 미소금융 제대로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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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금융’ 좌담회 참석자들은 "손실률을 낮추면서 자활 성공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왼쪽부터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권영준 이사장, 김승유 이사장, 임승태 상임위원, 노대명 연구위원. [오종택 기자]

담보나 신용이 없어서 제도권 금융회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저소득층 서민들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 대대적으로 확대된다. 이를 위해 기업들이 기부금을 내고, 정부가 제도를 정비하고 인프라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게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디트인 ‘미소금융사업’이다. ‘미소(美少)금융’은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우리말로 순화한 표현이다. ‘아름다운 소액대출’이란 뜻이다. 이달 미소금융중앙재단 공식 출범을 앞두고 1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미소금융이 미소 지으려면’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했다.

▶김정수(사회)=왜 이 시점에 미소금융이 필요한가.

▶김승유=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가 없어 제도권 금융과 거래하기 어려웠던 금융 소외계층에게 창업자금을 빌려줘 자활을 돕자는 취지다. 대손율을 낮춰야 하는 금융의 목표와 자활 성공률을 높여야 하는 사회복지의 목표를 동시에 갖는다. 지난 10년간 이런 역할을 해 온 소액서민금융재단을 확대 개편하는 것이다. 재원은 기부금과 은행의 휴면예금이다.

▶사회=지속 가능한 사업을 위해서는 재원 조달이 가장 중요할 듯하다. 지금은 정부가 분위기를 조성하니까 대기업이 기부금을 내겠지만, 나중에도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까.

▶김승유=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의 투명성과 지배구조가 화두가 됐다. 공동체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는 기업은 계속 성장할 수 없다. 기부는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사회 통합의 길이기도 하다.

▶임승태=지난해 금융위기를 잘 이겨낸 기업들이 그늘진 곳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기업들이 선뜻 동의한 걸로 안다. 과거에는 돈만 내고 말았는데, 이번엔 기업들이 직접 운영하고 참여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기업이 미소금융사업을 하고자 하면 자신이 낸 기부금을 배분받아 직접 운영할 수도 있다. 지속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사회=대기업이나 은행은 기존의 사회공헌활동에 더해 추가로 기부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 같다.

▶임승태=대기업의 연간 기부금액은 약 2조원인데, 미소금융재단 기부금은 전체의 5% 수준인 연간 1000억원이다. 대기업이 부담으로 느끼진 않을 것이다.

▶권영준=지난해 말 세계 금융위기로 거대 금융회사들이 무너질 때도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업들은 살아남았다.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역사가 벌써 30년이 넘었다. 성공의 첫째 요인은 ‘은혜의 경제원리’라고 본다. 기부자는 돈(기부금)과 시간(자원봉사)을 내놓지만 되돌려받는 기쁨이 훨씬 크기 때문에 경제적 ‘나눔 승수’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이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현장에 대한 관리가 치밀해야 한다. 헌신적인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사회=자활자금 회수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책이 있는가.

▶임승태=기존에 사업을 하고 있는 민간단체인 사회연대은행의 회수율이 85%쯤 된다. 미소금융은 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자활의지가 강하고, 상환 능력도 갖춘 수혜자를 선정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노대명=중소기업이 창업해 3년 안에 성공할 확률이 10% 내외라고 한다. 사회 소외계층은 성공확률이 더 낮을 수 있다. 손실을 피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사업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상환율을 높이기 위해 능력 있는 사람을 수혜자로 뽑는다면, 진정한 소외계층에는 자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김승유=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이자율이 15%인데, 우리 현실은 다르기 때문에 대출 이자율을 높일 수도 없다. 결국 밀착형 관리를 할 수 있는 뜻있는 자원봉사자를 모으는 게 관건이다.

▶사회=마이크로 크레디트를 해 오던 민간단체들은 활동이 위축될 수 있겠다. 그들의 전문성을 활용할 방안이 있을까.

▶노대명=민간단체들 사이에 실제로 그런 우려가 있다. 기부금 총액은 제한돼 있는데, 정부가 연간 2000억원을 모으면 기존 민간단체에 가던 기부금이 줄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미소금융재단의 사업을 일선에서 운영하는 복지사업자(지부)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게 해결방법이다.

▶권영준=민간단체보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이 나서면 자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재단은 고속도로를 깔아주는 역할을 하고, 그 위에서 달리는 사람들은 지역 단위의 복지사업자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김승유=중앙재단은 복지사업자와 경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재원을 지원해 줄 것이다. 시스템 구축, 자원봉사자 및 직원의 선발 및 교육, 사업자 선정 및 평가 등을 하게 된다.

▶사회=기부도 민간에서 하고 일도 민간에서 하는데, 마치 정부가 사업을 주도하는 것처럼 비친다.

▶임승태=2004년 6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에 관한 원칙 여덟 가지가 제정됐다. 그중 하나가 정부는 사업의 공급자가 아니라 지원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미소금융사업을 주도하려는 게 아니라 인프라 구축, 데이터 수집, 세제 혜택 제공, 관계기관 간 네트워크 구축 등 민간이 자율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다.

▶김승유=자원봉사자를 선발하고 교육하는 것이나 인프라 구축은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이런 운영경비는 따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부자들은 대체로 기부금에서 운영경비를 충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직원들 월급 주려고 기부하기 싫다’는 것이다.

▶노대명=정부는 우선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에 관한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 기관이 먼저 만들어졌고, 관련 법률이 없는 상태다. 세제 혜택이나 지원방법 등을 구체화하는 게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운영 경비와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정부가 지원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 사업의 성공 열쇠는 면밀한 사업 관리에 있다. 관리가 가능하도록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는 데 재정을 투입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임승태=초기 단계에 재정을 투입할 계획은 없다. 정부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다. 재정 지원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많다. 각 지역의 고용안정센터·소상공인지원센터 같은 기구와 마을회관 같은 공간을 활용해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민간의 자율 운영을 도울 것이다.

▶사회=사업이 확대되면 전문 인력 확보가 관건일 텐데.

▶김승유=해외의 경우 대학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우리도 이를 고려해볼 만하다.

▶노대명=청년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에서 경험을 쌓고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임승태=성공의 열쇠는 사업 아이디어 제공과 지속적인 관리다. 사업 아이템 선정부터 재무·회계·마케팅·영업 등 모든 부문을 일일이 봐줘야 한다. 

 정리=박현영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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