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홍순영 對 조성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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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최고조에 달했던 94년 봄의 핵위기 때를 돌아보자. 미국은 전쟁 준비를 빈틈없이 진행했다.

걸프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한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주한미군에 실전배치됐다.

구식의 코브라 헬기대대가 아파치 헬기로 교체되고, 탱크와 장갑차가 증파되고, 북한의 포대를 추적할 최첨단 레이더가 들어왔다.

미군 전투병력도 1천명 증파돼 3만7천명의 한도를 꽉 채웠다.

북한은 8천4백개의 야포 및 2천4백개의 로켓 발사대와 함께 병력의 65%를 휴전선 근처로 전진배치했다.

북한은 개전 (開戰) 후 12시간 안에 서울에 5천번의 포격을 가할 준비를 갖췄다.

한.미 연합군의 반격도 서울의 파괴와 엄청난 인명피해를 막지는 못할 것이었다.

국방부는 빌 클린턴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90일 안에 한국군은 49만명, 미군은 5만2천명의 전상자 (戰傷者) 를 낼 것이라고 보고했다.

예상되는 전쟁의 규모에 경악한 클린턴은 핵위기 해결을 군사적인 수단에서 외교적인 수단으로 바꾸고 북.미 고위급회담의 재개를 받아들였다.

그때 미국이 정책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이라크와 코소보 사태를 보면 설마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에 정말 미사일 공격을 가하지야 않았겠지라는 생각은 너무 한가하다.

핵문제에 관한 한 미국의 반응은 언제나 민감하다.

한반도 전쟁의 최종적인 결과가 통일이라고 해도 누가 엄청난 재앙을 대가로 통일을 원할 것인가.

지금의 미사일 위기는 다르다.

미국은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의 발언에 상관없이 북한의 대포동2호 발사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보지 않는다.

이런 견해는 북한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인 전 국방차관보 리처드 아미티지가 지난달 중앙일보 길정우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다.

공화당에 가까운 그의 생각이 이렇다면 다른 미국인들의 입장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는 94년 제네바합의 자체가 아니라 합의정신의 위반이다.

합의정신을 위반한 데 대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실력행사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미국의 중동 평화구상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억제정책을 방해한다고 해도 군사행동을 정당화할 수준에는 못미친다.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사정거리에 드는 일본은 북한이 다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경제제재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무라 마사히코 (高村正彦) 외상의 경고대로 일본의 반응이 대북 경수로 사업을 위한 10억달러의 분담금 거부를 포함하면 제네바합의 자체를 원점으로 돌릴 위험성이 있다.

한국과 미국이 일본의 자제를 설득해야 한다.

일본이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위기의식에 편승해서는 안된다.

홍순영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은 북한 미사일 발사를 저지하기 위해서나 발사한 뒤의 응징으로 군사행동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반면에 조성태 (趙成台) 장관 및 국방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코언의 경고는 외교.경제적 제재 이상의 조치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외교통상부와 국방부의 견해차는 부처간 갈등이라기보다 이상적인 역할분담으로 보고 싶다.

국방부 주변의 강경론을 신중론으로 견제하는 것은 외교팀장의 임무다.

강경론이 지나치면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도 있고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이 전해지면 생각지도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가 아니면 군사보복에 반대한다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입장표명은 그래서 시의적절하다.

강경론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임무는 국방부장관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필요할 때 내밀 수 있는 '오리발' 을 갖고 있는 게 좋다.

4자회담의 북.미 대표들이 제네바에서 만나 미사일 문제를 협상하는 것과 때를 맞춰 미국의 함정들이 동해에서 시위하는 것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지 전쟁준비가 아니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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