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돈과 과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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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화지역 주민들이 고압선의 지중화 (地中化) 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전측은 공사비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화지역만이 아니다.

경관 (景觀) 과 안전 문제 때문에 공중의 고압선은 어디서나 기피대상이다.

그런데 고압선의 존재가 발암원인까지 된다면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인구 밀집지역에는 땅속이건 공중이건 고압선이 지나지 못하게 해야 할 일이다.

그야말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큰일이다.

고압선이 일으키는 것과 같은 전자기장이 인체세포의 칼슘대사 (代謝)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암을 유발하는 성향이 있다는 충격적 연구가 나온 것은 7년 전의 일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렌스 - 버클리 연구소 소속의 로버트 리버디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두 편 논문에 따르면 고압선뿐 아니라 일반 전선의 전자기장이나 텔레비전.컴퓨터 등의 전자파도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후 많은 연구자가 이 문제를 연구했지만 아무도 리버디와 같은 데이터를 얻을 수 없었다.

의혹이 쌓이던 중 리버디가 실험 데이터에서 편리한 것만을 골라 썼다고 동료 한 사람이 제보했다.

연구소에서는 보건부의 연구윤리감사실에 조사를 의뢰했고 지난달 조사결과가 나왔다.

리버디가 데이터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발표논문을 철회한다는 것이다.

연구비 따기가 어려울 때 미국 과학자들은 "이거 암하고 무슨 관계 없을까?" 농담한다.

연구주제가 암과 관계만 있으면 연구비가 주체못할 정도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리버디도 화제의 논문들을 발표한 뒤 3백여만달러의 연구비를 받아 왔다.

평범한 연구자들이 만져보기 힘든 이 거액의 연구비 중 아직 집행되지 않은 부분은 환수될 것이라고 한다.

리버디는 데이터의 '부분적'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고의적 조작은 아니었으며 전자파가 세포의 대사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변함없이 믿는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인정해주는 과학자들도 많다.

연구자가 자기 가설에 도취되면 실험이나 관찰에서 얻은 데이터 중 가설과 맞지 않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라 생각해 묵살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버디의 고의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연구결과를 센세이셔널하게 만듦으로써 엄청난 실익 (實益) 을 얻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원리가 과학계까지 지배하게 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당황하고 있다.

미래를 내다봐야 할 과학연구가 오늘의 시장조건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제 몫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우울한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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