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신문 1931-35] 유대인 엑소더스 그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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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나라 없는 민족 유대인의 새 나라를 세우려는 정치적 시오니즘운동은 1890년대에 시작됐지만 1920년대까지는 크게 대중화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영국의 1918년 발포어선언으로 팔레스타인지역에 유대인 자치령을 세울 전망이 나타났지만, 실제 유럽을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1930년대 나치의 유대인 박해정책은 역설적으로 시오니즘의 실현을 부채질했다. 나치의 영향권으로부터 유대인의 이민 물결이 크게 일어남에 따라 1930년 10여만에 불과하던 팔레스타인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15년 후 50여만으로 늘어났다. 나치의 박해가 없었던들 이스라엘의 건국이 그토록 빨리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함께 유대인의 이민 물결이 향한 또 하나의 목적지는 미국이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미국을 일류문명국으로 끌어올려 주었고, 그만큼 대접을 받았다.

미국은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유대인이 사는 유일한 나라다. 그리고 유대인은 금융.법조.언론.학술.예술 등 미국의 핵심적 분야에서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세기' 라 하는 20세기 역사의 전개, 특히 그 후반부에서 이스라엘과 미국 두 나라를 근거로 한 유대인의 역할은 어느 민족 못지않게 컸다. 지금도 미국자본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의 진행을 놓고 '유대인의 대음모 (大陰謀)' 설이 끈질기게 떠돌 정도다.

히틀러의 박해로부터 촉발된 역사의 아이러니다.

김기협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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