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커스] 정치판 경계할 일 세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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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이 돌아왔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이제나 저제나 정치가 가닥 잡기를 기다린 지 벌써 한 해하고도 반년이 넘었는데 고장난 유성기판처럼 3金정치가 돌아왔다.

두 해도 못가 메뉴가 바닥나는 정치판을 볼 때 "역사는 반복되는가" 또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등의 수사는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지만 가식적으로라도 민주주의 명분을 쌓으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런데 지금은 무력만 안쓴다 뿐이지 국민들의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 최소한의 체면치레도 생략한 채 막가는 정치를 연출하고 있다.

내각제 약속이란 원초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연합하는 것은 영남지역을 소외시키고 정권을 창출하는 데는 안성맞춤이었으나, 명분을 따지자면 김영삼씨가 주도한 3당통합에나 비겨볼 수 있을 정도다.

내각제 약속이란 그 궁색한 명분에 분칠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우리가 분명히 알지만 선거 쟁점도 되지 못했다.

내각제 야합을 했든 약속을 했든 새로 탄생한 정부가 해방 후 최초의 진정한 민주정부가 될 공산이 충분한 정권이었지만 지역연합에 의한 공동정권인 이상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성을 탈피하고, 민주화연합이든 정책연합이든 계급연합이든 새로운 명분을 쌓아 정권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과욕과 권력에 대한 과신 때문에 새로운 다수파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김영삼씨가 돌아오며 정치판이 역설적으로 단순해진 것이 이를 웅변해준다.

아무리 못난 정치라도 어느 정도의 신비가 있고 뭔가 숨겨진 부분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그런 가운데 절망이 희망이 되기도 한다.

한데 이렇게까지 속내를 다 드러내 놓고 지역간 이합집산을 하기 시작하면 또 다른 권력을 창출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정치가 최소한의 사회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는지 의문이다.

지역정치란 우리가 믿고 맡긴 정치가들이 우리에게 덮어 씌운 올가미에 불과하다.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진 우리의 자화상을 훌훌 떨어버리고 적어도 다음 총선까지 눈에 불을 켜고 직접 챙겨야 하겠다.

앞으로 전개될 정치판을 읽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필자의 생각을 몇 가지 정리해 본다.

첫째, 내각제 논의에 다시는 현혹되지 말아야 하겠다. 자기들끼리 차 치고 포 치고, 내놨다 들여놨다 하는 것이 괘씸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는 단순논리는 위험천만이다.

이제 와서 보다 확실해지는 것이지만 내각제란 보스정치.가신 (家臣) 정치 풍토하에서 정치가들끼리 권력을 나눠먹는 최상의 방법일 뿐이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거든 작금의 정치상황을 보라. 사실은 현 공동정권이 내각제 아래에서의 연립내각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협조가 잘 돼서 국회가 제구실을 한다고 할 수 있는가? 차제에 문제는 권력구조가 아니라 민주화가 먼저라는 것을 신념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전국정당화를 명분으로 지역주의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지지기반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다 죽은 정치적 상징을 동원하거나, 살아 있는 수많은 +α들을 이간시키며 전국정당화를 꾀한다면 국민 대화합은커녕 국민 대와해를 부르게 될 것이다.

셋째, '젊은 피 수혈 ' 론을 경계해야 한다. 김영삼씨도 대통령 시절 '깜짝 놀랄' 젊은이를 숨겨둔 적이 있었다. 3당통합이라는 원죄를 지었어도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가운데 '동지' 들을 믿고 사람을 키웠으면 놀래 줄 일도 없었겠지만 초읽기에 몰려 자충수를 두는 바람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정권도 잃었다.

이제 와서 70대 원로들이 40대, 50대, 60대를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30대에게 수혈을 받겠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실속은 없으면서 괜스레 세대간에 불신만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만약 정치적 세대 유전에 문제가 있다면 세대를 뛰어넘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서로를 격려할 일이지, "늙은 피" 라고 서로 손가락질 할 것은 아니다.

가신들을 평생 길러온 정치 원로들이 '젊은 가신' 에게 눈독 들이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개운치 않다.

조중무<국민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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