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金 넘어설 사람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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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1세기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정치 9단 3인이 최근 보여준 행보는 과연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두에 두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취할 수 있는 행위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흐름이나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기득권에 안주해 온갖 폐해를 확대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은 무엇보다 고비용.저효율의 부패하고 낙후된 정치구조를 개혁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해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과거와는 다른 희망의 정치가 실시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을 외면한 채 이들은 경쟁적으로 지역감정을 촉발시키고 있으며, 공약과 신의를 헌신짝 저버리듯 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만은 유지하고 보자는 등,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는커녕 좌절과 실의에 빠뜨리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기에 국민들은 정치 9단에 대한 기대를 단념한 채 이들의 행보에 냉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보다 본질적이고도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의 대부분이 정치 9단의 행태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문하생들로 충원돼 있고, 9단을 뛰어넘어 건설적인 대안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진정한 정치인은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 문하생 중에는 9단과 거의 같은 세월을 민주화운동 또는 근대화작업에 동참했던 중견 정치인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 대부분이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9단이 걸어온 길을 답습하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는 정치 9단이 공동으로 조성한 지역감정이라는 틀 안에 들기만 하면, 단번에 정계 상층부로 비약하는 불합리한 현상이 구조화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3金정치를 재생산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쉽게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중진임에도 불구하고, 즐겨 3金의 그늘에 몸을 의탁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정치는 퇴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들은 9단 못지않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평소 중진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경륜을 펼 생각은 않고, 9단의 아류로 만족해 정치권의 편을 나누고 줄을 가르는 데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3金정치가 종식되지 않고 지속돼 '후 (後) 3金시대' 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의 폐단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3金정치에 안주함으로써 중진 자신은 물론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 9단의 판단마저 흐리게 하는 거품현상을 만들어, 자신을 왜소화하고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인 9단을 독주와 독단.독선에 빠지게 한다. 이 때문에 정치 9단과 함께 냉소와 청산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이다.

줄서기는 정치권의 수혈대상이라는 '새로운 피' 또는 '젊은 피'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대에서조차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참신한 인사를 영입해 정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보겠다는 구호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현상은 정계개편이 추진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다시 한번 한국정치의 척박성과 파당성을 느끼게 하고 있다.

젊음과 패기로 미래를 개척하는 데 앞장서야 할 주인공들이 오히려 정치 9단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모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어느 모로 봐도 수혈대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계 중진들의 각성과 신중한 처신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3金 그늘에의 안주가 현재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21세기에도 통용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3金정치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희망을 주는 정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첫째, 정치 9단이 흔드는 깃발에 따라 주관없이 옮겨 다니는 모습이 아니라 시대적 사명과 국민적 여망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경륜을 쌓아 이를 바탕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비전을 주고 이들과 합심해 '後3金시대' 를 깨고 밝은 미래를 여는 과업에 매진해야 한다. 이 길만이 21세기 지도자로서 부상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연 <경남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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