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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재배치 사업' 명분보다 실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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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 7월 22~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0차 한.미동맹미래정책구상 회의에서 1년6개월여 진행됐던 용산 미군기지 이전 합의서 협상이 마무리됐다. 서울 도심에서 외국군이 사용해왔던 부지의 환수라는 역사적 숙원을 이루면서, 주한 미군 사령부의 '평택시대'가 열리고 있다. 합의서 협상 결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미동맹과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이전사업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접근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부의 협상 실무자들은 처음부터 용산기지 이전 사업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유념하면서 후세에 누가 되지 않는 합의서를 도출해야겠다는 각오와 사명감을 갖고 출발했다. 그 결과, 새로운 합의서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1990년도 합의서에 비해 크게 개선됐음을 감히 자부한다.

지난해 초 90년도의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는 물론 깊이 파묻혀 있던 각종 서류와 신문기사를 분석한 결과, 90년도 합의서가 현재의 한.미관계와 정치 사회 사정에 비춰 불합리한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용산 골프장을 비롯한 3개의 시설이 이전된 바 있고, 비록 국내법적인 흠결 논란이 있다 하더라도 90년도 합의서 자체는 국제법상 유효하다는 현실적 한계를 확인했다. 이러한 현실과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합의서를 위한 협상 방향과 중점을 마련했다.

사실 미국 측은 협상 초기 90년도 합의서를 대폭 수정하거나 대체하기보다는 그 합의서에 기초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이전 일정과 대상부대만을 소폭 개정하는 선에서 협상을 종결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협상대표단은 이전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합의서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합의서 도출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미국 측에 끈질기게 설득했다. 끝내는 미국 측도 그러한 우리 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90년도 합의서를 전면 대체하는 새로운 합의서를 마련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우선 합의서 체계를 새롭게 구성해 기존의 합의서를 대체하고 국회 비준동의를 얻도록 하여 국내법적 흠결 논란을 해소했다. 또한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적용되지 않는 청구권 및 기지 내 식당 등의 영업손실보상 여부, 이사비용 및 군인 아파트 제공 방법, 미 대사관 시설 이전 문제, 지휘통신시설 이전 방법, 설계계약주체, 환경오염 처리 문제 등에 대해서도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 90년도 합의서의 불합리한 내용들을 모두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또한 합의서 협상에 있어서 한.미 간에 일관되게 적용한 원칙은 이전 비용의 최소화, 사업 추진의 투명화, 그리고 한국 측 주도의 사업 추진이었다. 우선 90년도와는 달리 이전 비용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비용과 관련한 억측과 오해를 방지하면서 정부가 확신을 갖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기초시설종합계획(IMP) 작성 단계에서, 그리고 각종 불합리한 조항의 수정 또는 삭제를 통해 총 1조원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우리 측 주도 아래 투명하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모든 계약권을 한국 측이 행사하고, 95% 이상의 비용을 현물(또는 용역)로 제공하고, 현물이든 현금이든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한.미 공동으로 확인 및 검증해 한국 측이 인정하는 경우에만 집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보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면도 있을 수 있다. 다소 이견이 있다 하더라도 이전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도와야 할 때다.

용산기지를 포함한 주한미군 재배치 사업의 차질 없는 집행을 위한 대비가 중요한 시점이다. 우선 2005년까지 평택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부지 매입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편입지역 주민 및 평택 지역의 우려와 고통이 최소화되도록, 특별법을 통해 평택지역 발전방안과 토지보상법에 추가한 보상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민도 평택 주민이 직면한 어려움에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택 주민도 우리의 안보여건과 국가의 정책적 입장을 감안해 현명한 판단과 협조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기지이전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추진체제 보강이 필요한 시점이다. 90년도 합의서의 불합리한 내용 수정을 통한 비용 절약도 크지만, 시설종합계획(MP) 작성, 설계, 시공 과정에서 사명감 있는 전문가들의 꼼꼼한 검토와 확인을 통한 비용 절약은 더욱 클 것이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비용도 절약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사업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원과 협조는 물론, 시민사회단체나 언론의 건설적인 비판과 제안도 필요하다. 명분보다는 실익, 더 크게는 국익의 관점에서 이전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동기 소파(SOFA)합동위 용산기지이전 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