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포기와 베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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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심심치않게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어색한 게 사실. 무대에서도 금발 가발을 뒤집어쓴 백인분장은 아무리 잘 꾸며도 어설프게만 보인다.

하지만 흑인으로의 변신은 탄성을 자아낼 만큼 그럴듯하다. 뮤지컬 '라이프' 에서 이영자가 진짜 흑인이 무대에 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리얼했던 것처럼 이번 서울시립뮤지컬단 (단장 이종훈) 의 '포기와 베스' 출연진들도 일단 외형 변신에는 성공적이다.

미국 남부 흑인빈민가의 마약중독자 크라운 (원유석.이병준 더블캐스팅) 의 애인 베스 (강효성.이혜경 더블) 와 그녀를 사랑하며 끝까지 절망하지 않는 절름발이 포기 (김법래 분) , 마을에 중심을 잡아주는 넉넉한 마리아 등 모두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는 영락없는 흑인들이다.

조지 거슈윈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포기와 베스' 는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막상 이 작품을 직접 본 관객은 드물다. 지난 84년 국내 초연된 이후 거의 무대에 올려지지 않았기 때문.

뛰어난 작품성에다 재미도 만만찮은 이 작품이 외면받아온 이유는 음악에 있다. 당초 오페라로 작곡돼 성악가들의 벨칸토 발성이 필요할 만큼 고음의 아리아가 많은 것은 물론 '랩소디 인 블루' 로 재즈 작곡가로까지 불리웠던 거슈윈의 작품인 만큼 재즈풍 선율도 섞여 소화해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인영가 풍의 '우리네 고향은 아프리카' 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잘 알려진 노래 '서머타임' 으로 이어진다. 원작에는 1막에만 나오지만 워낙 인기있는 곡이다 보니 이번 공연에는 2막에서도 베스의 노래로 다시 한번 등장한다.

코러스와 아카펠라는 무리없이 거슈윈의 작품을 받쳐주고 있지만 재즈리듬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마약딜러이자 베스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스포팅라이프 (송영규) 의 '꼭 그렇다는 법은 없네' 와 '가자, 뉴욕으로' 는 특별히 흠잡을 수는 없지만 재즈의 질퍽한 맛도 느낄 수 없는 평범한 노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음악적 완성도에서는 다소 떨어지지만 여느 창작 뮤지컬에서 맛보기 힘든 원작의 탄탄한 구성이 갖는 힘은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특이한 커튼콜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02 - 399 - 1626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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