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보고서 왜 앞당겨 꺼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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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 양국이 6일 페리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 북한이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의 대북 (對北) 권고안 (일괄타결안)에 대해 줄곧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때문이다.

북한 방문때 페리 조정관은 북한 권력서열 2위인 김영남 (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을 만나 한.미.일 3국의 대북정책안을 전달했지만 북한은 아직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서해 교전 (交戰) 사태가 일어나고, 베이징 (北京) 의 남북 차관급회담이 결렬되는 등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다.

미사일 재발사 움직임이 감지되는 등 북.미간에도 긴장요소가 꿈틀거리고 있다.

페리보고서 공개방침은 한.미간 치밀한 교감끝에 나왔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미국방문 중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미국의 국내상황이 조기공개쪽으로 옮기게 만들었다" 는 게 우리측 관계자의 분석이다.

이 관계자는 "페리의 권고안이 북한에 먹혀들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미국 행정부의 초조감이 반영된 것" 이라고 설명했다.

페리는 북한이 미사일을 다시 발사할 경우 포용정책을 기조로 한 자신의 권고안이 정치적 손상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칫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줄 경우 미 의회의 반발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에 유동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기보다 미리 한.미.일 대북정책의 청사진을 공개해버리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일 수 있다" 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도 대북관계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서는 페리보고서의 조기공개가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관계자는 "보고서 공개는 햇볕정책의 의지를 대내외에 선명히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라고 기대했다.

북한에 이끌려 지지부진했던 포괄적 접근방안의 기본틀을 가시화 함으로써 북한을 대화테이블에 바짝 끌어다 앉힐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배경에 따라 페리보고서는 예상보다 강경한 입장이 담길 수 있다고 우리 정부당국자들은 입을 모은다.

당초 페리보고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 조건으로 대북경제제재 완화와 북.미관계 개선 등 당근이 주어진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이 이를 거부할 경우 받게될 손실쪽에 무게가 두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페리보고서 공개방침을 전한 소식통은 "페리 조정관이 북한을 다녀온 뒤 서해사태도 있었다" 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긍정적 변화는 없고 부정적 변화만 있다는 얘기다.

오타와 = 이연홍.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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