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체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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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10면

둘 중 하나다. 봄을 타거나 가을을 타거나. 더위를 타거나 추위를 타거나. 대개는 그렇다. 그러나 남편은 그렇지 않다. 남편은 뭐든 잘 타는 사람이다. 봄도 타고 가을도 탄다. 더위도 타고 추위도 탄다. 외로움도, 무서움도, 수줍음도 다 탄다. 라이더다.
라이더 남편은 자면서도 추위를 탄다. 자기 몸이 찬 것에 자기가 놀라서 깬다. 그렇다고 아주 깨는 것은 아니고 비몽사몽 간에 으스스 자기 몸을 쓰다듬는 것이다. 남편은 잠결에도 따뜻한 곳으로 돌아눕는다. 아내는 따뜻하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라서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아내의 몸은 따뜻하다.

남편은 모른다

아내의 따뜻한 품을 향해 더듬더듬 가면서 남편은 잠시 생각을 더듬는다. 아내는 왜 따뜻한가? 아내는 ‘자중자애’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오줌이 마려워 일어난 꼭두새벽, 남편은 뭔가를 먹고 있는 아내를 본다. 잠결에 무심코 본 것인데 아내가 어찌나 민망해 하는지 남편은 터질 것 같은 방광도 잊고 아내에게로 간다. 아내가 먹던 것은 인삼을 갈아 꿀에 재어둔 것을 탄 우유다. 별것도 아니건만. 아내는 ‘자중자애’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족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남편은 무례한 사람이다.

무례한 남편은 ‘자중자애’하는 아내 품으로 간다. 아내의 몸은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유단포’ 같다. 천주교 재단의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던 아내는 겨울이면 하나씩 품에 안고 잤던 ‘유단포’의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 따뜻함도 아내 품의 그것만은 못했으리라.

아내의 품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화상의 위험도 없다. 단점이라면 단지 남편의 잠을 깨우고 옷을 벗긴다는 것이다. 따뜻함은 사람의 옷을 벗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햇볕처럼. 옷 벗은 남편의 몸은 이제 더 이상 차지 않다. 노골노골해진 몸은 노골적으로 변한다. 남편은 뜨겁다. 펄펄 끓는다. 37.2도다. 평소 산만하던 남편의 모든 신경이 한 곳으로 집중한다. 남편은 아내의 잠을 귀찮게 한다. 이럴 경우 남편은 절박하다. 아내는 박절하고. 절박한 남편은 아내에게 속삭인다.

“우리 하자.”
“뭘 해?”
“뭐든. 하자.”
“그냥 자. 피곤해.”

남편의 집중은 잠 덜 깬 아내의 짜증에 좌절한다. 남편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다. 포기도 잘 탄다고 할까. 포기한 남편은 급속 냉각한다. 남편은 돌아눕는다. 이제 잠이 다 달아나고 몸은 뜨거워져서 정말 남편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내의 체온, 37.2도를 남겨두고.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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